여행을 끝내고 난 뒤에야, 내가 너무 많이 가진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든 생각은 내 방이 꼭 내 가방 같다는 생각이었다. 배낭 한가득 담긴 나의 욕심처럼 방안 곳곳에 내 욕심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여행지 숙소에서 느꼈던 무의 아름다움 대신 소유의 편안함이 내 방에 있었다.
집에 있으니까 없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이 다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 그것도 과할 정도로 말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과하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그것들을 필요로 했고, 사서 분명히 몇 번은 썼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물건들을 잘 쓰고 있고, 잘 쓰는 물건들에 돈을 쓰는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정말 잘 쓰고 있었던 게 맞았을까?
베트남 여행을 떠날 때, 지인에게 선물 받은 수제 인센스를 챙겼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 줌의 인센스는 결국 다 쓰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들고 왔다. 그런데 거기에 외국산 인센스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베트남에 머물면서 한국에서 챙겨 온 인센스가 불이 잘 붙지 않아 불편하다는 핑계로 새로운 인센스를 한 통 샀다. 베트남을 여행하는 내내 그 한통을 잘 사용하다가 마지막 여행지인 발리에서 폭주했다. 어느새 내 가방에는 인센스가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한국에서 짐을 풀며 인센스함을 정리하는데, 이미 집에는 새것과 다름없는 상태의 인센스를 발견했다. 구매하고 뒤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던 인센스들이 이제야 보였다.
인센스들을 시작으로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을 다시 점검해 보았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물건을 샀고,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물건을 쓰고(안 쓰고) 있는지 말이다. 방에 있는 물건들을 유심히 정리하다 보니 내 소비에 한 가지 패턴을 발견했다. 바로 나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소비하는 것들이 참 많았다.
나를 위한 투자라는 핑계의 탈을 쓴 소비의 최고봉은 바로 책이었다. 방 곳곳에 책이 가득했다. 서랍장에도, 수납함에도, 행거 아래에도 곳곳에 보관만 하고 있는 책들이 참 많았다. 그 책들은 앞 몇 장만 읽거나 아니면 거의 읽지 않은 책들이다. 책을 보관할 장소가 없으면 당근으로 읽지도 않은 오래된 책을 헐값에 판매하고 또 비싼 가격으로 새책을 사들여 보관한다. 그리고 책을 살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이 책을 다 읽으면 나는 똑똑해질 거니, 나의 지식이 확장될 테니까라는 핑계로 읽지도 않을 책을 주야장천 사대고 있었다. 읽지도 않고 보관만 하고 있을 책들을 말이다.
나는 왜 제대로 쓰지도 못할 것들에 돈을 썼을까. 나는 왜 필요하다지도 않은 것들을 기어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물건을 사고 말았을까. 나는 왜 '소비중독'에 걸려버렸을까.
한참을 고민하고 내린 답은 '욕심'때문이었다. 그것을 지금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과 내가 원하는 것을 '지금' 정말로 너무나 가지고 싶다는 욕심말이다. 내가 원하는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 돈을 쓴 것이 아니라 '나의 즉흥적인 감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돈을 써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시적으로 소유하는 기쁨이 내게 너무나 크기에.
우습게도 한 때 나는 내가 미니멀라이프를 살고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방안에 가득한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리는 일들이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안 쓰는 물건들을 정리할 때마다 내 속이 다 시원했다. 그래서 분기별로 물건들을 버렸다. 쓰레기봉지를 한 통, 두 통을 비워내고서야 '이런 게 비움'이지하며 만족했다. 오늘 다시 생각해 보니 버린 물건들은 대부분 가족의 물건이었다. 한 때 같이 방을 썼던 동생이 남기고 간 물건들을 '이제 안 쓰지?'라며 무차별적으로 버려대고, 그 빈자리에 나의 물건들을 가득 채웠던 것이다.
내 물건을 버릴 때는 고심하고 고심하며, '언젠가 또 쓰겠지?'라며 주저하다가 남의 물건 버릴 때는 과감하게 '이제 안 입잖아. 버려!'라고 말하며 남의 물건은 쉽게 쓰레기로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이제야 사실 나는 아무것도 버리고 지도 않았고,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