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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조식 문화 가이드 1부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조식 메뉴 7가지

by 만꺼

요즘 여행을 갈 때마다 리조트나 호텔에서 묵는 일이 많아지면서,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바로 조식에 대한 집착(?)이 점점 심해졌다는 점이다. 조식 뷔페에 줄지어 놓인 수많은 메뉴 중에서 어떤 음식이 이 숙소의 시그니처(Signature) 일지를 고민하다 보면, 아침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너머 그 나라의 식문화를 소개하는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화려하진 않지만, 사람들이 평소에 무엇을 먹고, 어떤 맛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아침 식사에는 꽤 솔직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레이시아는 특히나 흥미로운 나라였다.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가 함께 살아가는 다민족 사회답게, 민족마다 서로 다른 조리법과 식재료, 향신료를 사용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다. 쌀로 지은 나시 르막(말레이계), 철판 위에서 바삭하게 구운 로띠 찬나이(인도계), 달콤한 카야잼을 바른 토스트와 반숙 계란이 함께 나오는 카야 토스트(중국계)까지 방식도, 풍미도 전혀 다른 음식들이 ‘조식’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테이블에 올라온다.


마막(Mamak)


이처럼 다양성은 말레이시아 조식의 가장 큰 특징이지만, 그 안에는 또 다른 공통점도 있다. 바로 실용적인 아침 식사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아침 식사는 빠르고 간편하며, 호커센터나 마막 식당, 코피띠암 같은 생활 밀착형 공간에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주식과 디저트의 경계도 유연하다. 떡처럼 보이는 쿠이나, 달콤한 로띠 역시 대표적인 아침 메뉴로 자리 잡고 있고, 커피나 밀크티와의 조합은 간식과 식사의 구분마저 흐리게 만든다.


이제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아침 식사 메뉴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상징적인 요리를 꼽자면 단연 나시 르막(Nasi Lemak)이다. 코코넛 밀크로 지은 밥에 매콤한 삼발 소스를 곁들이고, 멸치, 땅콩, 삶은 달걀, 오이 등 기본 구성만으로도 완결된 한 끼가 되는 이 요리는 말레이계 전통 음식이자 ‘국민 조식’이라 불릴 만큼 인기가 많다. 포장 방식 또한 독특한데, 바나나잎이나 종이에 삼각형 형태로 싸서 판매되는 경우가 많아 여행 중 간편하게 들고 이동하며 먹기 좋다. 가격은 보통 10링깃 미만으로 매우 저렴하다.


나시르막


맛의 핵심은 단연 ‘삼발’ 소스다. 고추, 마늘, 양파 등을 넣고 졸여낸 이 소스는 강한 매운맛과 감칠맛이 특징이며, 고소한 코코넛 밥과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삼발의 매운 정도는 한국 기준보다 강한 편이므로, 매운 음식에 익숙하지 않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면 보통 삼발 소스의 매운맛보다 코코넛 밥의 단맛이 더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이 많다) 최근에는 닭튀김, 삼발 오징어, 소시지, 계란프라이 등을 추가해 좀 더 푸짐하게 먹는 방식도 많아지고 있다.


나시 르막은 로컬 카페, 호커센터, 마막 식당은 물론 대부분의 호텔 조식 뷔페에도 포함되어 있어 접근성이 매우 좋다. 간단한 구성으로 현지식 입문에 적합하며, 따뜻한 말레이풍 아침을 경험해보고자 하는 여행자에게는 부담 없는 첫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특히 이른 아침(6~9시) 시간대에 찾으면 갓 조리된 신선한 상태의 나시 르막을 만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두 번째로 소개할 말레이시아 조식은 인도계 무슬림 식문화의 대표 메뉴인 로띠 찬나이(Roti Canai)이다. 이는 바삭하게 구운 밀전병을 커리에 찍어 먹는 음식으로, 간단하지만 중독성 있는 맛으로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에게 인기가 높다. 넓고 얇게 펼쳐진 반죽을 겹겹이 접은 뒤 철판에 구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식감을 만든다. 여기에 렌틸콩 커리(달), 닭고기나 생선 커리를 곁들여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로띠 찬나이


로띠는 손으로 찢어 커리(Curry)에 찍어 먹는 것이 보통이며, 따로 도구 없이 손으로 먹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포크나 숟가락도 함께 제공한다. 커리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향신료의 깊은 맛이 있어, 다양한 입맛을 만족시킨다. 현지에서는 커리를 곁들이지 않고 연유나 설탕에 찍어 디저트처럼 즐기기도 하는데, 이는 특히 아침 시간대에 달달한 메뉴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선택이 된다.


이 메뉴는 변형도 다양하다. 계란을 추가한 Roti Telur, 마가린과 설탕을 곁들인 Roti Planta, 바나나가 들어간 Roti Pisang 등 간단한 조합을 통해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대부분 24시간 운영되는 마막(Mamak) 식당에서 쉽게 접할 수 있으며, 가격은 보통 1~3링깃 수준으로 매우 저렴하다.


세 번째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모두 사랑받는 조식 조합인 카야 토스트(Kaya Toast)와 반숙 계란이다. 코코넛과 계란, 설탕을 졸여 만든 카야잼(Kaya)을 식빵에 바르고, 두꺼운 버터를 곁들여 구운 토스트와 간장·후추를 뿌린 반숙 계란을 함께 먹는 방식이다. 페라나칸(중국계 혼혈) 식문화에서 유래된 메뉴로, 간단하지만 독특한 조합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카야 토스트


토스트는 보통 테두리를 제거한 식빵을 얇게 구워 바삭한 식감을 살린다. 여기에 카야잼 특유의 달콤하고 은은한 코코넛 향, 그리고 짭조름한 버터가 조화를 이룬다. 반숙 계란은 따뜻한 그릇에 담겨 부드러운 상태로 제공되며, 간장과 흑후추를 뿌려 간을 맞춘 후 숟가락으로 휘저어 한입씩 먹는다. 일부 현지인들은 토스트를 계란에 찍어 먹거나, 커피에 적셔 먹는 방식도 선호한다.


보통은 화이트 커피(연유를 넣은 진한 로컬식 커피)와 함께 세트 메뉴로 구성되며, 코피띠암(Kopitiam)이라 불리는 로컬 카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체인점으로는 OldTown White Coffee나 Toast Box, Killiney Kopitiam 등이 있으며, 깔끔한 실내에서 쾌적하게 식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자에게도 부담이 적다.


네 번째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료 중 하나인 테 타릭(Teh Tarik)이다. Teh(Tea, 茶)는 차를 의미하며, Tarik은 말레이어로 “당기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말 그대로 번역하면 ‘당긴 차’라는 뜻으로, 연유를 넣은 홍차를 두 개의 컵 사이에 번갈아 따르며 차를 끌어내는 듯이 거품을 내는 방식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음료 표면에 풍성한 거품이 형성되고, 차의 온도도 적당히 낮아져 바로 마시기 좋은 상태가 된다.


테 타릭


테 타릭은 진한 홍차에 연유를 섞어 만드는 만큼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강하며, 은은한 캐러멜 향이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맛이 부담스럽다면 주문 시 “꾸랑 마니스(kurang manis)”라고 말하면 덜 달게 만들어준다. 아이스 버전인 Teh Tarik Ais도 있으며, 더운 날씨나 식사 후에 가볍게 마시기에 적합하다. 커피를 같은 방식으로 만든 Kopi Tarik도 선택 가능하다.


테 타릭은 단독으로 마시기도 하지만, 로띠 찬나이, 쿠이, 카야 토스트 등과 함께 조식 세트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마막 식당에서는 거의 기본처럼 제공되며, 코피띠암이나 호커센터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격은 1.5~3링깃 정도로 저렴한 편이다.


다섯 번째는 말레이시아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볶음밥과 볶음면 계열의 조식인 미 고랭(Mee Goreng)나시 고랭(Nasi Goreng)이다. ‘미(Mee)’는 면, ‘나시(Nasi)’는 밥을 뜻하며, 고랭(Goreng)은 볶았다는 의미다. 사실 두 음식은 워낙 간단하기 때문에 동남아 어느 나라에 가도 볼 수 있는 흔한 메뉴이다. 다만 말레이시아에서는 여기에도 삼발 소스를 활용하기 때문에, 보다 짭짤하고 매콤한 맛이 특징이다.


미 고랭


보통 아침 메뉴로 나오는 미 고랭·나시 고랭은 양이 많지 않고, 조리도 빠르기 때문에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하기에 적합하다. 지역이나 식당 유형에 따라 변형된 메뉴도 다양하다. Mee Goreng Mamak은 인도계 마막 식당에서 판매하는 매운 버전으로, 향신료 사용이 좀 더 강하고 감칠맛이 돋보인다. Nasi Goreng Kampung은 말레이 전통 스타일로, 멸치와 삼발을 강조한 시골식 매운 볶음밥이다. 이 외에도 해산물, 닭고기, 야채 등을 조합한 파생 메뉴들이 많아 기호에 따라 선택 가능하다.


여섯 번째는 말레이시아식 전통 디저트인 쿠이(Kuih)이다. 쿠이는 아침 식사이자 간식, 디저트이기도 한 독특한 포지션을 갖고 있는 음식으로, 찹쌀과 코코넛, 팜슈가를 주재료로 하여 다양한 형태와 색감으로 만들어진다. 겉모습만 보면 떡이나 경단류처럼 보이지만, 그 종류와 조리법은 지역과 민족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쿠이


대표적인 쿠이로는 무지개떡 스타일의 쿠이 라피스(Kuih Lapis), 팜슈가 시럽이 안에서 터지는 찹쌀 경단인 온데온데(Ondeh-Ondeh), 찹쌀 위에 달콤한 코코넛 토핑을 얹은 풀룻 인티(Pulut Inti) 등이 있다. 대부분 손바닥 크기인데, 보기 좋은 색감과 부드럽고 쫀득한 식감, 그리고 강한 코코넛 향이 특징이다. 식사보다는 차나 커피와 함께 곁들이는 간식에 가까우나, 현지에서는 아침 식사로도 자주 소비된다.


쿠이는 보통 아침 6~9시 사이의 재래시장이나 길거리 포장마차, 혹은 호커센터 등에서 소량 단위로 판매된다. 가격은 개당 1~2링깃 수준으로 매우 저렴하며, 다양한 종류를 조합해 먹는 재미도 있다. 다만 단맛이 상당히 강한 편이라, 음료와 함께 먹는 걸 추천한다. 보통은 테 타릭이나 말린 차류와 함께 먹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함께 파는 음료도 달달한 경우가 많다는 게 함정.)


마지막은 중국 남부 조식 문화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죽(Congee)딤섬(Dim Sum) 조합이다. 부드럽고 담백한 죽에 다양한 종류의 딤섬을 곁들여 먹는 방식으로, 특히 아침 시간대에 운영되는 전통 찻집이나 로컬 식당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고기, 생선, 피단(century egg) 등을 넣어 끓인 죽은 따뜻하고 부드러워 속이 편안하며, 딤섬은 바삭하거나 육즙이 가득해 식사의 풍미를 더한다.


죽과 딤섬


죽 종류로는 닭죽, 생선죽, 돼지고기죽 등 기본적인 구성 외에도 피단과 간 돼지고기를 넣은 피단죽이 대표적이다. 간장이나 절임채소(짜차이)를 곁들이면 짭조름한 맛이 더해져 입맛을 돋운다. 딤섬은 샤오마이(Siew Mai), 하가우(Har Gow), 유부말이, 춘권 등으로 구성되며, 찐 것부터 튀긴 것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딤섬은 보통 차와 함께 세트 형태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통 찻집에서는 아침 7~11시 사이에만 딤섬 카트를 운행하기 때문에 이른 시간 방문이 필요하다. 쿠알라룸푸르, 이포, 조호르바루 등 화교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며, 딤섬 전문점 외에도 일반 로컬 카페나 호커센터에서도 간단한 형태로 제공된다.


지금까지 말레이시아 조식의 대표 메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지역별 조식의 차이, 식사 장소의 특징, 여행자 입장에서 조식을 고르는 팁 등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보려 한다.


> 내 멋대로 작성하는 말레이시아 여행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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