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바람이 불어오다

by 손서영

어느 날 산들이 방에 들어가니 들이가 유모차 안에서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조심조심 사진에 담았다.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다가 차에 치인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하였다. 나는 즉시 고양이를 차에 태우고 동물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동물병원에 도착해서 검사를 해보니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 고양이의 배속에 꼬물이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일단 쇼크 상태에 빠진 고양이를 며칠간 입원처치하며 지켜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양이는 천천히 건강을 되찾았고 다행히 임보처를 찾아서 고양이를 보낼 수 있었다. 만약 임보처가 없었다면 나는 새끼들을 포기했겠지만, 다행히도 임보처를 찾아 그곳에서 무사히 4마리의 아깽이를 출산하였다.


KakaoTalk_20210728_102242620.jpg 산이는 아직 어려보였는데 임신을 하고 있었다. 길고양이에게도 중성화는 매우 시급한 문제다.

아기 고양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엄마 젖을 뗄 때쯤 3마리가 입양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그중 한 마리가 걸음이 이상하다고 연락이 왔다. 보내준 동영상을 보니 신경 증상 같았다. 아무래도 선천적인 이상이 있는듯했다. 병원에 데려와서 검사해보니 정확한 건 MRI를 찍어봐야 알겠지만 신경계 검사와 엑스레이 상으로는 어떤 치료나 수술로 되돌릴 수 있는 질환은 아니었다. 하지만 선천적 신경 이상의 경우 커가면서 좋아질 수도 있으므로 마냥 비관적이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소식을 접한 입양자분께서는 건강하지 못한 고양이를 키울 수 없다는 이유로 입양을 포기하셨다. 건강하지 못한 개체는 이렇게 입양 순위에서 밀리고 만다. 앞으로의 병원비에 대한 부담과 케어하기 힘든 여러 애로사항들은 입양을 꺼리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그 아이를 내가 거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불편한 아이는 수의사인 내가 키우는 것이 가장 합당했다. 하지만 나 혼자 힘으로는 그 아이를 돌봐주기 부족했다. 아무래도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는 내가 계속 그 아이 옆에서 돌봐주기란 조금 힘들 것 같았다. 시력도 약하고 걸음걸이도 불편한 그 아이를 돌봐줄 진짜 엄마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와 엄마를 입양했다. 엄마의 이름은 ‘산이’, 아이의 이름은 ‘들이’라고 지었다. 그렇게 산들이가 나의 집에 입성하였다. 임시보호를 맡아주신 분은 산이의 아이 중 입양을 못간 아이를 맡아서 키우기로 하셨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KakaoTalk_20210727_211101609.jpg 창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둘이 낮잠을 자고 있다. 이때는 초여름이라서 햇살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았다. 사이좋게 자는 모습이 천사같다.


큰 개들이 많아져서 이제는 산책냥이로 키우기에는 우리 집이 다소 위험해졌다. 그리고 장애가 있는 들이에게 산책냥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그래서 가장 안쪽에 위치한 나의 옷방을 치우고 산들이 방으로 꾸몄다. 사실 꾸밀 것도 없이 온갖 잡동사니와 상자들이 쌓여있는 그 방은 산들이가 장난치고 놀기에 딱 안성맞춤이었다. 들이는 다행히 평소 생활하기에는 큰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산이와 장난도 잘 치고 높은데도 잘 올라가고 내려왔다. 장난도 심해서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엄마 산이의 껌딱지로 잘 생활해주었다. 들이는 꼭 나 같았다. 엄마인 산이를 너무 좋아해서 산이가 물 마시면 물을 마시고, 밥을 먹으면 꼭 같이 머리를 들이밀고 밥을 먹었다. 그런 들이를 산이는 연신 핥아주면 사랑해주었다. 이런 산들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 둘을 떼어놓았으면 어쩔뻔했나 싶다.


KakaoTalk_20210727_205736849.jpg 어느 날 산들이 방에 들어가니 들이가 유모차 안에서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조심조심 사진에 담았다.


들이는 걸음걸이만 문제가 아니고 시력도 좋지 않다. 엄마 산이의 눈과 비교해보면 그냥 뿌옇기만 한 들이의 눈이 걱정이 된다. 처음 들이가 오고 얼마 안 돼서 들이가 눈이 얼마나 안 보이는지 알아보려고 손가락을 눈 주위에서 흔들어 보았다. 들이가 미동도 안 하고 있어서 정말 안 보이나 보다 라고 포기할 때쯤 들이가 갑자기 손으로 내 손가락을 팍 쳐냈다. 순간적이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들이는 눈동자가 흐릿해서 잘 안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낚시줄 장난도 잘 치고 가끔 하는 시력 테스트에 내 손가락을 쳐내거나 잡거나 하면서 반응을 보였다. 이게 보여서 그러는 건지 다른 감각들을 동원해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생활하기 불편함이 없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KakaoTalk_20210727_210926254.jpg 간식을 배불리 먹고 커다란 인형위에 올라가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들이다. 들이는 아주 밝고 명랑한 아이이다.


사람들은 장애가 있으면 혹시라도 병원비가 많이 나오지는 않을까, 키우기 힘들지는 않을까 겁을 먹고 그런 아이는 아예 쳐다도 보지 않는다. 하지만 동물은 장애가 한군데 있다고 해도 그들만이 가진 무한한 긍정 에너지로 잘 극복해낸다. 사람이라면 장애를 가지게 됐다는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동물은 자신의 몸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몸에 빠르게 적응해 나간다. 이런 면도 동물에게서 배울 점 중에 하나다. 물론 건강한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든 일인데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운다는 건 사실 웬만큼 마음을 먹지 않으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쪽 눈이 실명한 아이, 한쪽 다리가 장애가 있는 아이,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 등 건강하지만 한군데 장애가 있는 경우는 생각보다 케어하기 어렵지 않다. 나중에 어떤 아이가 선물처럼 다가왔을 때 그 아이의 장애가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드리는 말이다. 들이처럼 장애가 있어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로 나타나준 인연을 받아들이면 그 수고로움의 몇 배에 해당하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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