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순이를 처음 만난 건 한파가 몰아치던 한겨울이었다. 매서운 추위에 보호소의 아이들은 잔뜩 웅크러들었고 그나마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작은 집에 들어가 추위를 피했다. 하지만 애들 수에 비해 집은 턱없이 부족했고 집을 차지하지 못한 아이들은 바람 한점 막아주는 곳이 없는 허허벌판에서 그저 그 시간을 오롯이 견디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아이들을 전부 데려가서 따듯한 내 방 한칸을 내어주고 싶었다. 그렇치만 그럴수 없다는 현실에 나는 안절부절 못할 뿐이었다.
그렇게 집에 못들어가고 서성이는 아이들 틈에 임신한 몸을 하고 있는 깜순이를 보았다. 깜순이는 겁이 많아서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구석에서 던져주는 간식을 겨우 받아먹을 수 있었다. 배는 남산만하게 부풀어서 차디찬 바닥에 배를 깔고 벌벌 떨고 있었다. 나는 보호소를 3년간 다니면서 그곳에서 출산하는 많은 개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 끝도 보았다. 어미개는 새끼가 젖을 뗄때쯤 안락사를 당하고 새끼는 조금 클때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으나 그마저도 6개월 정도였다. 죽음을 맞이하는 건 그렇다고 해도 너무도 열악한 환경에서 새끼를 낳고 기르는 것은 너무 큰 형벌이었다. 새끼 강아지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케이지 밖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도 그들에게 너무 잔인한 처사였다.
나는 깜순이를 데리고 가서 임신 중절 수술을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더 이상 그런 형벌의 굴레를 반복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해산을 하게 하고 그 새끼들을 다 거둔다면 가장 행복한 결말이겠지만 그러기엔 우리 집에도 너무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태아가 더 자라기 전에 수술을 해줘야겠다고 마음먹고 깜순이를 집에 데리고 온 다음날 수술을 진행하였다. 아이는 모두 4마리였다. 수술은 잘 되었고 깜순이는 마취에서 잘 깨어났다. 그리고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된 그 아이들의 명복을 빌어주며 우리 집 사과나무 밑에 묻어 주었다.
깜순이는 나의 예상대로 세상 착한 아이였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나쁜 기억이 있는지 나에게 마음을 여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깜순이가 마음의 빗장을 푸는 동안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그리고 여름으로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쓰다듬어 주러 다가가면 오줌을 지릴 정도로 무서워 했다. 그도 그럴것이 깜순이를 잡아서 처음보는 환경에 데려다 놓고 미처 익숙해 지기도 전에 차가운 수술대에 올려 자기의 새끼까지 앗아갔으니... 깜순이에게 나는 천하의 나쁜 놈이었다.
천하의 나쁜 놈 딱지를 떼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깜순이에게 너무 자주 다가가는 것도, 그렇다고 너무 신경을 안쓰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하루에 아침, 저녁 2번만 쓰다듬어 주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매번 실패하였다. 내가 다가가면 도망가기 바빠서 그런 아이를 무리해서 잡는건 오히려 더 역효과가 날 수 있어 그냥 두었다. 하지만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다가갔다. 어떤 날은 허락하고 어떤 날은 나를 멀리했다. 허락한 날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천천히 등도 쓰다듬어 주었다.
깜순이는 밥시간을 무척 좋아한다. 때가 되면 아침, 저녁으로 매일 다양하게 나오는 밥을 언제나 감사히 먹는다. 나는 깜순이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사심을 담아 맛있는 부분으로 밥을 수북하게 담아준다. 근데 요즘 우리 애들이 깜순이 밥이 자기들 밥보다 맛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말았다. 각자 머릿수대로 밥을 챙겨주어도 꼭 깜순이 밥을 넘본다. 착하고 순둥순둥한 깜순이는 다른 애들이 다가오기만 해도 자기 밥그릇을 포기하고 얼른 옆으로 비킨다. 하지만 그렇다고 깜순이의 밥이 자기 밥이 될리 만무하다. 언제나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나의 눈에 딱 걸리면 나비처럼 날아올라 벌처럼 깜순이의 밥그릇을 낚아챈다. 그리고 다시 깜순이가 있는 곳에 밀어넣는다. 이런 신경전이 매일 식사시간마다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깜순이는 자기 밥을 지켜주는 나를 보면서 조금씩 신뢰가 쌓여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신뢰가 차곡차곡 쌓이던 어느 날, 깜순이가 내가 앉아 있는 책상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워있었다. 나는 살짝 팔을 내려 쓰다듬어 주려는 순간, 깜순이가 재빨리 도망쳤다. 나는 조금 실망하려는 그때, 깜순이가 조금씩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다가온 깜순이는 내 손이 있는 곳에 자기 머리를 갔다 대고는 가만히 있었다. 나는 너무 고맙고 반갑고 기쁘고 만감이 교차하면서 깜순이를 가만히 어루만져 주었다. 이런 순간이 가장 뿌듯하고 감격스러운 순간이 아닐까? 그리고 지금은 내가 다가오면 꼬리를 친다. 깜순이가 한발 나에게로 다가와주었기에 나는 두발 세발 더 나아가 깜순이의 얼어있는 마음을 녹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깜순이가 언젠가 나에게 달려오는 그 날까지 나는 깜순이에게 언제나 먼저 손을 내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