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곰을 좋아했다. 특유의 곰이 주는 선한 인상과 푸근한 몸, 부드러운 털코트를 가진 곰을 미워할 수는 없었다. 곰이 사실은 매우 위험할 수 있는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곰에 대한 애정은 전혀 식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보기는 어려운 상상 속의 곰을 나는 너무도 어이없는 곳에서 맞닥뜨렸다. 너무도 더럽고 열악한 시골 농가의 울타리 속 곰은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생기를 잃은 채로 그저 하루하루를 생존하고 있었다.
사육곰은 웅담을 비롯하여 기타 신체 부위를 이용하기 위해 사육되고 있는 곰을 말한다. 한때 정부는 농가 소득 증대 방안으로 곰 사육을 권장하였는데 후에 곰을 비롯한 멸종위기종 보호 여론이 높아지면서 수입과 수출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1993년 곰의 도축도 금지되면서(현재는 10년 이상된 곰의 도축은 허용하고 있다) 곰은 살아있는 채로 철창 속에 방치되었다. 그렇게 현재 남아있는 사육곰의 수는 398마리이다. 더 이상 농가의 수입원이 아닌 애물단지로 전락한 곰에게 인간은 자비를 베풀어 줄리 만무하였고, 곰은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최악의 경우 물도 제공되지 않아 그들의 분뇨를 먹어야 했다.
개농장보다 못한 현실에 처한 곰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곰보금자리: project moon bear>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사육곰에서 더 나은 삶을’이라는 슬로건으로 곰 생추어리를 건립하는 것이 목표인 단체이다. 사육곰의 복지를 개선하는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외국(중국, 베트남, 라오스 등)과 같이 곰 생추어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생추어리란, 동물이 평생 편히 지낼 수 있는 안식처를 말한다. 동물원과는 또 다른 개념이다.
우리는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어가는 생추어리를 건립하는 일 이전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나섰다. 콘크리트 바닥에서 무료한 일상을 살고 있는 곰들에게 ‘해먹’을 설치해주는 작업을 시작하였고, 본래 높은 곳에서 휴식하는 것을 좋아하는 곰들은 그들만의 달콤한 휴식처인 해먹에 올라가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곰들이 좋아하는 과일 (단호박, 사과, 토마토 등)을 준비해서 해먹을 설치할 때 같이 주면 곰들은 어쩌면 평생 처음 맛보는 맛있는 과일을 행복한 모습으로 손에 쥐고 먹고는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강원도 화천의 한 농가에서 연락이 왔다. 더 이상 곰을 돌볼 수 없으니 우리에게 곰을 돌봐달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는 이곳에 있는 15마리 곰을 살리기 위해 구조비용을 지불하고 소유권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시설 보수와 개선, 먹이 다양화와 행동 풍부화 그리고 필요한 의료 지원 활동을 시작하였다. 물통도 없는 상태라 물통부터 제작하여 달아주고, 토마토, 참외, 바나나, 오이 등 과일과 야채를 준비해서 매주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부드러운 땅이 아닌 콘크리트 바닥 생활때문에 발이 다친 아이들이 꽤나 많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약을 처방해서 약을 먹이는 일도 하고 있다. 곰이 머리가 좋아 약을 섞으면 금방 알아채서 빵에 섞거나 꿀을 바르거나 마시멜로에 넣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약을 급여하고 있다. 그리고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활하는 것이 안타까워 폐타이어를 이용해서 방석을 만들어주었더니 곰들이 너무 잘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내년에는 곰 생추어리로 이사갈 수 있도록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
봄이면 자신의 오물 냄새가 아닌 꽃내음을 실컷 들이마시고, 여름이면 녹슨 철장이 아닌 녹음이 푸르른 나무 위를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는 곳. 가을이면 불편한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흙바닥을 밟고, 겨울이면 철창 구석이 아닌 아늑한 곳에서 좋을 꿈을 꾸며 겨울잠을 늘어지게 잘 수 있는 곳. 그런 곳에서 우리의 곰들이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삶을 사는 것이 그들에게는 꿈꾸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을 만큼 실현 불가능한 일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위해 희생만 강요당한 반달가슴곰에게 이제는 우리가 선물같은 새 삶을 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에는 내가 키우는 개에서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동물사랑은 나의 개에서 모든 개들로 그리고 고양이들로 옮겨갔고 다시 또 모든 농장 동물과 실험동물, 전시동물을 넘어 사육곰에게까지 확장되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며 그들 고유의 삶의 방식대로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동물에 대한 일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도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 일을 지지해주고 후원해주는 사람들도 필요하다. 그렇게 우리 하나하나가 힘을 모은다면 소외되어 낙후된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는 사육곰의 앞날에 소중한 행복을 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곰보금자리 프로젝트의 더 자세한 활동을 보고 싶은 분은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