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나의 개들은 행복할까? 이런 물음에 답을 던져주는 영화가 있다. 바로 안카 다미안의 <환상의 마로나>이다. 내가 그토록 오래 아이들을 관찰하고 교감하며 떠올렸던 생각들이 주인공 마로나의 독백에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며 많이 놀라웠고 이 영화에서 쓰인 의인화는 작위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개들을 관찰하며 그들과 교감해온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마로나의 말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마로나의 혼종견 엄마 밑에서 9형제 중에 막내로 태어났다. 언제 엄마곁을 떠나게 된 건지는 몰라도 마로나는 “멍멍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렇게 다른 집에 가게 된 마로나는 그날 밤 바로 밖에 버려지고 총 3명의 보호자를 거쳐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마로나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시간을 쭉 함께 따라가본다.
마로나는 처음 버려졌을 때 [마놀]이라는 곡예사에게 팔려가게 되고 마놀의 집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로나는 갑자기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만의 보금자리, 나만의 이름, 그리고 나만의 마놀... 이런 큰 행복은 흔하지 않다며 자신을 제일가는 부자 개라고도 한다. 개들은 그렇다. 우리가 행복이라는 것을 거창한 것에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에도 개들은 행복이란 아주 작고 진정으로 소중한 것에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말을 우리가 실제로 들을 수 있다면 더 많은 순간을 행복이라 말하지 않을까?
환상의 마로나라는 영화가 가진 힘은 마로나를 통해서 우리는 개의 입장에서 세상을 살펴볼 기회를 얻는 것에도 있지만, 마로나의 나레이션을 통해 우리 인생을 가로지르는 기본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마로나는 마놀의 아나로써 살고 싶어했지만 마놀이 자신 때문에 힘겨워한다는 것을 알고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그때 이런 말을 한다. “매일 마지막일 것처럼 내 인간의 얼굴을 핥을 것. 언젠가 정말 마지막이 될 것이므로.” 나는 많은 아이들을 돌보다보니 강아지별로 떠난 아이들도 많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일을 겪다보니 나는 매일매일 그 아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 순간이 참 많았다. 이런 일들 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참 영원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일들이 참 많다. 그래서 지금 이순간을 감사하고 소중이 여겨야 겠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런데 마로나는 이런 깨달음을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다. 개는 이미 깨달음을 알고 태어나서 인간처럼 오래 살 필요가 없다는데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마로나는 곡예사 [마놀]의 집을 나와 떠돌다 건축업자 [이스트반]을 만나 [사라]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다. 영화에서 마로나와 이스트반과의 행복한 순간의 장면으로 둘이 함께 공원에서 공놀이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스트반이 공을 던지면 마로나가 뛰어가서 공을 가지고 이스트반에게로 달려가는 놀이이다. 이 놀이에서 마로나는 이스트반이 공놀이를 좋아해서 한다고 말한다. 이스트반이 공을 던지는 것만 좋아하지 다시 집어오는 건 싫어해서 자신이 그 역할을 한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행복한 얼굴만 볼 수 있다면 이 정도쯤이야” 나의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 얼굴을 보여줬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매일 산더미같은 집안일에 짜증섞인 얼굴만 보인 건 아닌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산책을 더 이상 즐거운 얼굴이 아닌 귀찮은 얼굴로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말이다. 그에 비해 아이들은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환한 미소로 자신의 행복함을 나에게 표현했던가. 아이들은 나도 아이들을 향해 환하게 웃어주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온몸으로 자신의 마음을 나에게 전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 방법 말고는 나를 행복하게 할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아이들에게 행복한 미소를 자주 보여주려고 한다. 그들이 있기에 나는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이제는 내가 표현할 차례인 것 같다.
“완벽한 순간이 있다면 이것도 그 중 하나리라. 이런 순간을 위해서라면 개의 삶도 가치가 있다.” 마로나의 마지막 여정지인 [쏠랑주]의 [마로나]로 사는 동안, 마로나는 행복한 순간에 이런 말을 했다. 어쩌면 이 말 한마디에 마로나의 모든 여정이 가치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불행이 닥치든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에 비해 인간은 결과 중심적으로 사고를 한다. 과정이 어떻든지 결과가 좋으면 좋은 거고, 나쁜면 나쁜 것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개들은 순간순간을 살아간다. 결과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그 순간에 집중한다. 만약 인간처럼 결과로만 판단한다면 행복한 개는 극소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어리석게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의 가치를 순간순간에 두고 행복을 온몸으로 만끽한다. 그들이 우리보다 낫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마로나의 삶도 결코 허무하지 않다. 마로나의 고달팠던 삶도 행복한 순간순간으로 쪼개서 보면 행복한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마로나는 그리고 우리의 개들은 미련없이 눈을 감는다.
<환상의 마로나>라는 영화는 요번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작품으로 영화 상영이 끝나고 기자님과 함께 마로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보게 된 이 영화는 나에게 어쩌면 인생 영화 중 하나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학생들 앞에서 강의는 해보았지만 일반 관객들 앞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많이 긴장되고 떨리지만 잘하고 오겠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오시라는 말도 못하겠어서 이렇게 저만 휘리릭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