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 앉아서

by 손서영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된 벽난로가 있다. 벽난로는 공동생활 공간인 ‘홀’에 있고, 그곳에는 부엌과 식당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나는 그 공간에서 강아지들 밥을 만들고 나눠주고, 엄마는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며, 가족들은 그곳에 모여 함께 밥을 먹는다.


[눈이 내린 날 아이들과 소복하게 쌓인 눈이 보기 좋다. 평화로운 겨울날의 풍경이다.]

홀에는 문 대신 두꺼운 커튼이 걸려 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한 것이지만, 겨울이 오면 웃풍이 심해진다. 그래서 보일러로 난방을 해도 겨울철이면 벽난로가 중요한 난방 역할을 한다. 겨울이 오기 전이면 아빠는 장작을 정성스레 준비하고, 날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엄마가 장작을 들여와 불을 지피신다. 그래서 홀에 들어와 따뜻하게 타오르는 불을 보고 있으면, 그 온기가 마치 부모님의 사랑처럼 느껴져 나는 벽난로 불을 유난히 좋아한다.


[예전에 개들이 이렇게 많지 않을 때에는 고양이와 강아지가 모두 같이 지냈다. 벽난로에 불을 때면 고양이들은 어느 틈에 모여들어 불을 쬐곤 했다.]

추운 날에는 걸어서 몇 걸음 되지 않는 내 방에서 홀까지 오는 길도 유난히 멀게 느껴진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커튼을 젖히는 순간 밀려오는 훈훈함은 보일러 난방과는 다른, 사람의 온기가 섞인 따뜻함이다. 그 온기에 이끌리듯 외투를 벗고 불 앞에 앉으면, 하루 동안 쌓였던 피로가 서서히 녹아내린다. 따뜻한 홀에서 잠이 덜 깬 아이들이 웅크리고 있는 모습도 평화롭고,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참 좋다. 불은 하루 종일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묘한 힘이 있다. 장작을 더 넣고, 불이 잘 타도록 위치를 바꿔주고, 은근히 손이 가는 일이 많다. 아마 그래서 더 지루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홀에 모여있는 나의 아이들.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있다. 홀에는 더이상 방석을 놀 수 없을 지경으로 방석과 아이들로 꽉 들어찬다.]

하지만 불이 꺼지는 시기가 있다. 부모님이 서울에 가 계실 때다. 나는 출근 준비로 바쁘고, 퇴근 후에는 장작이 다 타기 전에 잠자리에 들어야 하니 불을 피우지 못한다. 아직 꺼지지 않은 불과 아이들만 두고 홀을 떠나는 일은 마음이 놓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일러 온도를 아무리 높여도 불이 없는 홀은 어쩐지 쌀쌀하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곁에 있어도 부모님의 빈자리가 남긴 공백까지 채워주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내게 불은 곧 부모님의 사랑이어서, 불이 없는 홀은 쉽게 따뜻해지지 않는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아침 산책 시간은 늘 행복하다. 모처럼 햇빛이 나는 날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따스함을 즐겼다.]

다행히 예전보다 부모님이 서울에 가시는 일이 줄어 이번 겨울에는 거의 매일 불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각자 유자차나 모과차를 한 잔씩 들고 불가에 둘어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내가 가장 아끼는 순간이다. 아직도 나는 부모님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어린아이처럼 좋다. 오늘도 불가에 앉아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며 글을 쓴다. 홀에는 이 방 아이들, 저 방 아이들까지 모두 모여 발 디딜틈조차 없지만, 나는 이 따뜻하고 꽉 찬 시간을 마음속 깊이 담아둔다. 언젠가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를 지금 이 겨울의 온기를 잊지 않기 위해서.

[엄마 럭키(호랑무늬)와 아들 비키(흰둥이)가 나른하게 누워있다. 비키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윙크를 해주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