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도둑

by 손서영

우리 집에는 오래된 전통이 있다. 신발 도둑이 대를 이어 내려온다는, 조금은 성가시고 아주 사랑스러운 전통. 첫번째 계승자는 소복이였다. 어린 시절의 소복이는 신발을 훔치는 일에 천재적이었다. 지금은 세월이 지나 더 이상 신발을 물고 달아나지 않지만, 내가 침대 밑 슬리퍼에 발을 넣으려는 순간이면 번개처럼 낚아채 간다. 마치 그건 아직도 자신의 것이라는 듯이.


소복이가 슬리퍼를 당차게 물고 튀었다. 나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기를 잡아보라고 나를 도발하고 있다.


얼룩이는 또 다른 방식의 도둑이었다. 산책길에서 세상 모든 것을 주워 오던 아이. 신발이든, 쓰레기든, 나뭇가지든. 하지만 세월은 장난기를 천천히 데려갔고, 우리 집은 한동안 ‘신발 평화 시대’가 도래하였다.


얼룩이가 아빠 신발을 훔춰서 가지고 있다 현장에서 발각되었다. 아빠는 "이놈~" 한마디만 하시고 차마 귀여워서 혼을 내지 못하셨다.


그 평화를 깨고 샛별처럼 등장한 신발 도둑은, 입양한 지 두 달이 되어가는 살구이다. 너무 아름다운 외모, 그리고 그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환경에서 빛이 사라진 눈으로 움직임이 거의 없는 모습이 마음에 걸려 보호소에서 데려온 아이였다. 처음 한 달은 정말 조용했다. 사람 손도 잘 타지 않고, 마치 야생동물처럼 조용히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난 얌전하고 소심한 아이라 생각했다.


얼룩이는 산책을 나가면 이것 저것 자기가 들고 올 수 있는거면 무엇이든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소복이도 아기였을 시절에 얼룩이를 따라 이것 저것 집에 가지고 올려고 무진 애를 썼다. 너무 사랑스런 순간들이였다.


한 달이 지나고, 살구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집 안을 뛰어다니고, 신발을 물고 달아나고, 부모님 신발까지 망가뜨리며 하루 종일 신이나서 그 에너지를 분출하기 여념이 없다. 여기에 마린이까지 합세했다. 살구가 신발을 가져오면 미린이는 그 옆에서 망가진 신발을 공처럼 던지고 논다. 다른 장난감은 쳐다도 안보고 신발만 좋아하는 마린이에게 나는 이미 망가진 신발을 장난감으로 던져준다.


살구가 훔쳐온 나의 어그부츠를 낙아채 물고 기분 좋게 뛰어놀고 있는 마린이다. 마린이 입에 들어가면 신발은 포기해야 한다.


키가 큰 살구로 인해 신발들은 선반 위로 올라갔고, 나는 어그 부츠를 잃었고, 아빠는 크록스를 잃었고 엄마는 간신히 신발을 지켜냈다. 하지만 아무도 화내지 않는다. 그 나이의 생명은 원래 그렇게 세상을 물고 흔들며 자라는 거니까. 우리가 더 조심하지는 쪽이다.


고기국에 밥을 말아 고기와 같이 주자 침대에서 먹겠다고 성화를 부리더니 고기랑 국물만 다 먹고 밥은 잔뜩 남겨놓았다.


살구는 사슴같은 눈을 가졌고, 물처럼 흐르는 털을 지녔고, 푸른 회색 빛을 몸에 두르고 있다. 그리고 파괴의 신이다. 나는 이런 그 아이를 사랑한다. 요즘은 침대 위로 올라와 내 손길을 허락하기 시작했다. 나는 혼내기는 커녕 한 번이라도 더 만져보려고 비위를 맞추기 바쁘다. 보호소에서 늘 웅크리고 있던 아이가 이제는 세상을 어지럽힐 만큼 살아 움직인다. 나는 그게 좋다. 너무 좋다.

어서와, 살구.

이제 마음껏 살아도 돼.

건강하기만 하렴.

사랑해.

요즘은 세상편하게 침대에서 늘어져라 잠을 잔다. 처음에 웅크리고 있기만 하던 살구는 온데간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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