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몰래 좋아하는 비오는 날

by 손서영

우리 집 아이들은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 잔잔한 비는 좋아해서 신나게 뛰어다니다 시커먼 몰골로 들어와 나를 기함하게 만들지만,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밖에서 놀 수 없는 날이면 아이들은 실망한 얼굴로 방안에 옹기종기 모여든다.

조용해서 창밖을 보니 비키가 어디서 실컷 놀고 나서 나른한 얼굴로 나를 본다. 그 후 방에 들어온 비키를 욕실로 유인해서 목욕을 시켰다.

그런 날이면 퇴근 후 우리 모두 늘어지게 잠을 자거나 가만히 빗소리를 듣는다.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 나뭇잎에 스미는 소리, 흙바닥에 번지는 소리. 비들의 합창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비가 많이 오면 아이들은 잠을 잔다. 아이들이 잘 때가 가장 이쁘다.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지만 잘 때가 제일 이쁜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모르게 속으로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길 위의 아이들은 비를 잘 피하고 있는지 걱정하면서도, 오늘처럼 하루 종일 내리는 비가 주는 신선한 흙내음을 끝내 미워하지 못한다.

눈 한쪽이 실명해서 우리집에 오게된 딱풀이도 비오는 날에는 코코 잔다.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지만 그 누구보다 건강하고 씩씩한 울 집 개구쟁이다.


살짝 따뜻해진 날씨 위로 소복소복 내리는 비. 겨울 내내 꼭 닫혀 있던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방 안 공기가 한순간에 맑아진다.

살구가 신발 도둑질에 시들해지니 딱풀이가 나섰다. 내가 신발을 벗어놓으면 바람처럼 날아와서 가져간다. 다만 신발이 무거워서 멀리 못간다.


시골에서만 맡을 수 있는 청정한 공기 위에 얹힌 달달한 흙내음은 평생 누리고 싶은 사치다. 물론 비가 오면 아이들이 집 안에서 일을 치러 성가시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비 오는 날이 좋다.

문을 열어보니 너무 반가운 엘사가 전혀 반갑지 않은 몰골로 문 앞에 서 있는다. 또 목욕 타임이다 ㅠ.ㅠ ㅋㅋㅋㅋ


타닥타닥 빗소리에 잔잔한 연주곡을 틀어두면 오후는 더 나른해진다. 빗소리와 음악, 그리고 아이들의 고른 숨소리가 겹쳐질 때, 나는 이 순간이 너무 고마워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행복은 큰 사건이 아니라 이렇게 조용한 오후에 쌓이는 것이니까.

아, 아이들과 천년만년 이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