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아이들은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 잔잔한 비는 좋아해서 신나게 뛰어다니다 시커먼 몰골로 들어와 나를 기함하게 만들지만,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밖에서 놀 수 없는 날이면 아이들은 실망한 얼굴로 방안에 옹기종기 모여든다.
그런 날이면 퇴근 후 우리 모두 늘어지게 잠을 자거나 가만히 빗소리를 듣는다.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 나뭇잎에 스미는 소리, 흙바닥에 번지는 소리. 비들의 합창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모르게 속으로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길 위의 아이들은 비를 잘 피하고 있는지 걱정하면서도, 오늘처럼 하루 종일 내리는 비가 주는 신선한 흙내음을 끝내 미워하지 못한다.
살짝 따뜻해진 날씨 위로 소복소복 내리는 비. 겨울 내내 꼭 닫혀 있던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방 안 공기가 한순간에 맑아진다.
시골에서만 맡을 수 있는 청정한 공기 위에 얹힌 달달한 흙내음은 평생 누리고 싶은 사치다. 물론 비가 오면 아이들이 집 안에서 일을 치러 성가시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비 오는 날이 좋다.
타닥타닥 빗소리에 잔잔한 연주곡을 틀어두면 오후는 더 나른해진다. 빗소리와 음악, 그리고 아이들의 고른 숨소리가 겹쳐질 때, 나는 이 순간이 너무 고마워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행복은 큰 사건이 아니라 이렇게 조용한 오후에 쌓이는 것이니까.
아, 아이들과 천년만년 이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