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라와디의 먹부림 Dec 31. 2019

기내식, 아파도 먹을 거야

  여행을 갈 때 가장 설레는 순간은 아마도 출발하는 바로 그때가 아닐까. 목적지를 향해 비행기 또는 기차, 버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바퀴가 굴러가기만을 기다릴 때. 


 그럼 두 번째로 설레는 순간은 언제인가. 개인적으로는 목적지로 이동하며 또는 도착해서 먹는 첫 번째 밥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집에서 매일 먹는 메뉴여도, 편의점이나 슈퍼에서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식상한 아이템이라도 밖에서 먹으면 어쩌면 그렇게 반짝거리고 맛있는지. 


 그런 이유에서 이번 홍콩 여행(19년 9월)도 기내식을 기대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전날 공항에서 밤을 꼴딱 새운 상태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몸살이 온 것처럼 근육통이 스멀스멀 오르고 있었는데 사실 평소였다면 밥이고 뭐고 이불 뒤집어쓰고 요양을 했겠지.

 어쩌지, 이번 기내식은 포기해야 하나. 앞으로의 여행 일정과 나의 몸뚱이를 위해서..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기내식은 내 눈앞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아파도 먹을 거야.


홍콩에어라인의 인천-홍콩 아침 기내식. 돌아오는 새벽 비행기에서는 스낵류가 제공됐다.


  사실 홍콩 항공기이니까, 기내식도 뭔가 홍콩만의 생소하고 낯선 향이 강한 음식이 나오면 절대 안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아픈 걸 알고 이런 메뉴를 준비해주냐는 말이야. 부드러운 치즈가 두껍게 올라간 퐁신퐁신한 오믈렛(심지어 그 아래에는 해쉬브라운도 있었다), 통통하고 육즙 터지는 짭짤한 소시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익힌 양송이버섯과 정체 모를 녹색의 야채, 묵직함을 덜어 줄 익힌 방울토마토 한 개까지 완벽한 메인 메뉴. 


 솔직히 집에서는 오믈렛을 만들어 먹지 않는다. 심지어 치즈를 올리는 일은 더 없다. 주황색 슬라이스 치즈는 싫어하는 음식에 속한다. 그런데 기내식에 나오는 치즈 오믈렛은 정말 맛있다.


 빵도 그래. 평소 빵을 먹을 땐 버터를 발라 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토스트 구울 때 팬에 버터를 두르는 정도. 그런데 비행기만 타면, 기내식만 받으면 마치 엄마 뱃속에서부터 그래 왔듯이 자연스레 빵을 갈라 버터를 치덕치덕 바르고 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런 행동은 일절 하지 않으니 이상하기도 하지. 


 사실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 여행이니까, 기내식이니까. 평소에 싫어하던 치즈도, 짜다고 먹지 않는 해쉬브라운도, 느끼하다며 피하던 버터도, 여행의 설렘으로 멋지게 포장된 기내식으로 등장하면 거절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거절은커녕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메뉴들이 된다.


  기내식이 정말 완벽한 영양식이었는지, 비행기에서 내린 나는 몸살기가 싹 사라져 있었고 2박 3일 동안 열심히 놀다 왔다. 인천에 도착하고 다시 아팠다는 건 정말 미스터리한 뒷이야기다.


작가의 이전글 사탕 목걸이, 너무 갖고 싶었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