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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옆집줄리 Nov 01. 2015

나는 밸런스가 좋다

반전의 바란스

나는 밸런스가 좋다.


이게 웬 망언일까?

좋은 말인가? 그렇다 일부는.


내 피는 A형과 B형을 고루 섞여 있다. 10월 생이라 별자리도 저울 그림이 그려있는 천칭자리(the Balance)며 가끔 한방 체질 검사를 해도 양인과 음인이 꼭 반반씩 나온다. 아하! 이런 종류의 밸런스 ㅋㅋㅋ 이런 것들과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경미한 강박이라고 여겨질 만큼 균형을 추구하면서 살아왔다.


공부를 잘 하고 싶었지만 또 잘 논다는 소리도 듣고 싶었고, 사랑이 소중했고 우정도 잃기 싫었고, 회사에서의 역할과 집에서의 역할 모두에 충실하고 싶었다. 선배에게는 믿음직한 후배가, 후배에게는 먼저 손 내미는 살가운 선배가 돼주고 싶었다. (앗 이건 바뀌었어야 했나... 싶지만 사실이 그랬다.)


연애할 땐 밀당도 나름 잘했다. 박 터지게 싸우고 나서 상황이 종료되고 나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부농부농 했다.(이건 변덕스러운 건가.. 암튼.ㅋ) 주변에 누군가가  한쪽에 치우친 견해를 이야기할 때면 듣고 있는 것이 불편했고 특히 종교나 정치적인 이슈라면 더 더욱. 친구들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 나는 마치 중재자라도 되는냥 양 쪽의 의견들에 대해 종합하고 서로의 이해 포인트를 짚어 줬다.


이러한 균형 강박은 나를 성숙해졌다고 느껴지게 했다. 스스로 나를 편협하지 않은 '잘 자란 어른'이라고 생각하며  뿌듯해한 적도 있었다.

현재의 내 밥벌이에도 그것은 참 도움이 되었다. 갑의 그럴 듯 함으로 포장된 (사실은 매우 무리한) 요구를 제작팀에 설득시키거나 내가 봐도 민망한 아웃풋을 시간과 자원의 한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과물로 갑에게 납득시키는 등 갑/을/병/정 사이에 균형을 잡아 조율해주는 기획자의 역할에 소질이 있는 듯했다.


그런데, 서른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요즈음. 내 이런 균형욕에 불만이 생겼다.


우선은 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쏟는 에너지에 가끔 내가 지칠 때가 있다. 체력도 정신력도 고갈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러다 보니 가끔 쓸데없이 예민해지기도 한다. 뭐 근데 이런 것 쯤은 *스팀팩 *쉴드 번갈아 활용하면서 버티면 되니 큰 고민은 아니다.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진짜 고민 포인트 바로 이거다.


나는 어느새 너무 평범해져 버렸다. oh, shit! 극혐!


늘 양 쪽을 고루 신경 쓰며 살다 보니 어느  한쪽으로도 날이서질 않았다.  

어느새 '나'라는 사람을 표현해주는 개성이 사라진 것 같다.

'어른'이라는 감투에 자꾸 내 마음에 모난 부분은 처내고 기울어진 부분은 덜어내며 그저 평균적으로 살아내고 있는 건 아닐까... 삶에 밸런스... 그게 뭐라고.


또라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때론 오버하거나 혹은 많이 모자라보여 주변 사람들의 혀 끝 차는 원성을 들어보더라도 내 개성에 충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사춘기 때 미처 생각지 못한 바람이 생겼다.   

이 나이를 먹고  1~20년씩 알아온 친구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냐'라고 묻는 것은 새삼스럽겠지만  올해 송년회 때 술 한잔 걸치면 꼭 한번 물어봐야겠다.

의외로 또라이라는 답변이 나오면... 참 기쁠까? ㅋㅋㅋ


*밸런스 좋은 차(Tea) 한 잔으로 오늘의 글 마무리.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 때 마신 자바티 (홍차)


*부농부농 : 연애할 때 분홍빛이 과하게 피어날 때를 이르는 은어

*스팀팩 : 게임 캐릭터의 전투 자극제. 전투력은 상승하나 체력이 저하됨 ㅡㅜ

*쉴드: 방패. 공격당해도 체력 저하 없음.


*밸런스 좋은 차(Tea)

티 소믈리에가 차(Tea)를 품평할 때 '밸런스가  좋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호평이 아니다.

향미도 떫음도 라스트도 정말 그냥 무난한 균형을 가지고 있을 때 밸런스가 좋다라고 한다.

밸런스가 좋은 차들은 개성이 약해서 스트레이트로 마셔지기 보다는 과일향 등의 가향차에 베이스로 사용하거나 블렌딩용으로 폭넓게 이용된다. 쓰임새는 많지만 인도 아쌈이나 다질링처럼 자기 이름을 내 건 차는 못된다는 것이다.

흥칫뽕. 속상 했겠다.


- 옆 집 사는 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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