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 시즌1 그리고 2

연대하는 여성들

by 정키키




HBO 방송 드라마는 어디까지 발전해나갈 것인가. 미국의 숱한 방송사에서는 HBO의 독주를 막을만한 작품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니콜 키드먼과 메릴 스트립이 나오는 드라마를 또 어디서 본단 말인가요.



<빅 리틀 라이즈>는 다섯 인물 각각의 트라우마를 굉장히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시즌 1에서는 제인(쉐일린 우들리)과 셀레스트(니콜 키드먼) 그리고 매들린(리즈 위더스푼)의 트라우마를 보여준다. 보니(조 크라비츠)와 레나타(로라 던)의 이야기는 시즌 2에 나오며 셀레스트와 매들린의 이야기 또한 더 추가된다. 다섯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상세히 다룬다는 점에서 -원작 소설에는 없었던 내용을 만든-시즌2가 만족스러웠다.


시즌1보다 서스펜스가 떨어지지만 확실히 더 깊이 있으며 치유의 과정에 있다. 배우들이 말한 것처럼 각자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은 당연하고 쉬운 과정이 될 수 없다. 누군가는 또 실수를 하고 누군가는 두려워한다. 치유라는 것은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것처럼 규격이 맞춰져 있는 과정이 아니다. 마음은 종잡을 수 없는 것이며 좋았다가도 슬펐다가 강렬한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어렵다.




<빅 리틀 라이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대일 것이다. 나와 나의 고통을 나누고 공감하며 함께 달릴 수 있는 여성들. 특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처럼 시즌 1의 마지막에 해변가에서 제인이 조깅을 할 때 매들린과 셀레스트가 뒤에서 달리는 이미지가 그렇다.


제인이 해변가를 뛰는 이미지는 매 회 나오는데 그것은 제인에게 아주 중요하다. 제인은 자신을 강간한 남자가 누군지 알고 싶다. 그 남자의 구두가 기억나고 뒷모습이 흐릿하게 기억나고 폭력적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제인은 달린다. 남자의 앞모습을 확인하고 그에게 복수하는 꿈을 꾼다.

집에서 잠을 잘 때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총을 늘 머리맡에 두고 잔다. 강간범이 집으로 문을 부신 후 들어오는 악몽을 꾼다. 사격 연습장에 가서는 그를 생각하며 총을 쏘기도 한다. 제인에게 총은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무기이며 미래를 위한 선택이다.


제인의 아들인 지기가 학교 첫날 레나타의 딸의 목을 졸랐다는 누명을 쓰게 되고 그는 생각한다. 자신의 아들이 강간한 남자의 폭력성을 닮았다면 어떡하지, 하고.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페리라는 잘생기고 어린 남자와 결혼한 셀레스트다.

페리는 -시즌 2에서 메리 루이스가 페리가 아이였을 시절 학대했다는 말과 장면이 나오긴 한다- 셀레스트에게 폭행을 일삼는다. 페리는 '왜 나는 소외시켜? 왜 나는 안 알려줘?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 내 말보다 친구가 더 중요해?' 같은 어리숙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남자다. 모든 걸 자신이 통제해야 하고 한계 밖에서 벗어나면 눈이 돌아가는 남자다.

셀레스트가 그를 벗어나기로 결심한 것 역시 어떻게 보면 답답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뚜렷하게 바라보는 작업(상담)을 거치고 깨달으면서 셀레스트는 페리에 대한 희망을 놓게 된다.


제인은 이제껏 자신이 강간범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고 셀레스트 역시 절친한 친구인 매들린에게도 페리의 폭력을 말한 적이 없다. 그러나 제인은 매들린에게 그 사실을 얘기함으로써 굉장히 속 시원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연대로 가는 첫걸음이다.

서로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알게 되면서 그들은 오히려 우정을 나눈다. 페리의 죽음이 그들에게 하나의 거짓말이 되었고 그 거짓말은 우정이 되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이 드라마가 연대라는 키워드에 알맞았던 것은 남성을 위해 희생하는 여성이 없다는 것도 있다. 이와 비슷했던 한국 드라마가 있다.


2019년 초 엄청난 화제를 일으킨 '스카이 캐슬'은 생동감 넘치는 여성 배우들의 열연과 탄탄한 서사, 연출로 주목받았다. 시청자들이 스카이 캐슬에 열광했던 것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여성들의 서사가 한 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스카이 캐슬은 잘못을 저지른 남성(가장)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가정으로 돌아오고 여성들은 그를 받아주었다. 남성이 가정으로 돌아오기 위해, 변화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여성의 희생이 있었다. 그래서 스카이 캐슬의 마지막은 아쉬움이 크게 느껴진다.






여성들의 연대는 드라마 속에서 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여자들은 항상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지. 신이 여자를 너무 많이 만들었어.'

위 대사는 <빅 리틀 라이즈>에 나오는 것을 그대로 적은 것이다. 레나타가 자신의 아이가 학교 첫날 괴롭힘을 당한 것을 알게 되고 남편과 얘기 중인 상황. 자신이 워킹맘이라 다른 엄마들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얘기하자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저 대사를 뱉는다. 레나타가 그 말을 듣고 공감하며 맞장구쳤을까? 아니다. 그는 오히려 남편을 이상하게 쳐다봄으로써 그 문장을 용납하지 않는다.


레나타 같은 워킹맘(개인적으로 이런 단어도 좋아하지 않는다)에게 늘 돌아오는 시선은 '그러게, 엄마가 돼서 일만 하니까 애가 저렇게 다치지!'라는 것. 어째서 여성은 일과 가정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가? <빅 리틀 라이즈>에서 남편이 있는 여성들은 모두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평생을 아이에게 희생하며 산 그들은 엄마가 아닌 '나'의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여자의 손에 길러진 아이만을 원한다. 모 방송에서 나왔던 것처럼 여성이 일과 육아를 양립하는 것을 사람들은 욕심부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 '여자'들의 갈등은 단순히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하기 때문이 아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해괴한 문장이 인터넷과 온갖 영상 매체를 장악했을 때 왜 그런 프레임이 씌워졌는지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았고 그저 여자이기에 질투가 심하고 기싸움이 심하다는 이야기만 가득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오션스 8>을 찍을 당시 여성 배우들이 함께 있으니 서로 기싸움이 있지 않았냐는 질문에 출연진들은 하나같이 오히려 더 좋았다고 대답한 바 있다.


사회에는 여성의 이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존재한다. 여성을 향한 혐오 단어(맘충, 김치녀 등)가 우후죽순 생겼던 것은 그 기준을 벗어났을 때를 보여주는 것이다.


재밌게도 레나타의 남편은 시즌2에서 집안을 거덜 냈다. 자신의 돈만이 아닌 레나타의 돈까지도. 게다가 베이비 시터와 잦은 잠자리를 가졌으며 철 없이 자신의 장난감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 자신의 무능력으로 아내까지(레나타는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여성 잡지 인터뷰를 가질 참이었다) 끌어내리고 잘못을 사죄하긴 커녕 뻔뻔하게 군다. 재밌지 않은가.




<빅 리틀 라이즈>를 본 시청자들은 본인이 겪지 않았던 일임에도 크게 공감하고 감정이입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서 여성들의 연대가 드라마 속에서 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라고 적었다.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여성만의 약함이 아니라 오히려 강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라마는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고 모든 여성이 연대를 하는가? 에 대한 물음은 시즌2에 적절하게 나왔다고 본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메리 루이스는 페리의 어머니로 나온다. 아들의 죽음에 늘 의구심을 가지고 있으며 셀레스트와 주변 친구들을 압박하고 자신의 아들이 누군가를 폭행하고 강간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 사람이다. 제인을 강간한 사람이 페리고 그로 인해 태어난 지기라는 아들을 보고 그제야 어렴풋이 믿게 된다. 그러나 메리 루이스는 제인이 먼저 페리를 꼬신 것이 아니냐, 서로 합의된 것 아니냐는 등 2차 가해를 서슴지 않게 한다.


메리 루이스의 등장은 <빅 리틀 라이즈>에 어떤 시사점을 안겨주는가. 그는 가부장제의 학습이자 가해자다. 소중한 아들인 페리가 셀레스트를 폭행한 것을 믿을 수 없었고 그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철저히 남성 불안의 시각이다. 메리 루이스는 어쩌면 짐작했을 것이다. 페리가 셀레스트를 폭행했고 다른 여자를 강간했다고.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것이며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불안이라는 것은 굉장히 커다란 감정이라 메리 루이스는 어떻게든 자신의 확고함을 입증시켜야 했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양육권 분쟁으로 인해 셀레스트와 메리 루이스가 재판장에 나오는 씬들은 고통스럽고 폭력적이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충분히 사실적이다. 셀레스트의 아이들이 받은 충격은 아동 학대이다. 물론 페리는 자신이 셀레스트를 때리는 것을 아이들이 모르고 있다고 믿었고 셀레스트 역시 그 동영상을 보기 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다. 의도치 않은 학대도 학대이기 때문에 안타까웠다.


메리 루이스는 자신이 몰던 차에서 첫째 아들이 사고로 죽고 둘째인 페리에게 언어폭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페리가 폭력적인 성향을 띄게 되었다고 그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페리 때문에 셀레스트와 제인이 끔찍한 일을 당했던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재판이 끝나고 가려는 메리 루이스를 안아주는 아이들. 셀레스트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본다. 이를 보면 메리 루이스와 셀레스트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해진다.




<빅 리틀 라이즈>에 대해 할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다. 우선 엄마에게 언어폭력과 신체 폭력을 당한 보니의 트라우마와 매들린의 불륜에 대한 이야기와 트라우마. 보니는 계속해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페리를 계단에서 밀었고 그 때문에 페리가 죽었기 때문.


페리와 아예 관계가 없는 보니가 어째서 그를 밀었는지 궁금했는데 시즌2에서 그 이유를 보니의 입을 통해 말해준다.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엄마에게 증명하기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도 하고 자신의 과거가 떠올라 페리를 밀어버린 것까지. 보니 역시 폭력의 피해자였지만 그는 결국 엄마를 용서한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제 뚜렷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든 생각이지만 보니와 페리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둘은 언어폭력의 피해자들이다. 보니와 페리의 일생이 달랐던 것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보니가 모든 일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로웠다면 페리는 집착했고 통제했다. 이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볼 만하다.


진실은 피할 수 없다. 이것은 <빅 리틀 라이즈> 시즌 2의 엔딩과 맞물리는 문장이다. 다섯 명의 여자들은 페리의 죽음을 은폐했고 그 거짓말을 계속 지켜왔다. 그러나 진실은 거짓보다 큰 법. 그들은 각자 악몽을 꾸기도 하고 그날을 계속해서 떠올리기도 한다. 시즌 2 마지막에 그들은 다 같이 경찰서로 향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엔딩이다. 어떻게 보면 열린 결말인데, 시즌3을 위한 여지를 남겨두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시즌3 간절하다.




<빅 리틀 라이즈>는 굉장히 섬세한 드라마다. 연출적인 면과 삽입된 음악도 그렇고 배우들의 연기도 그러하다. 가장 훌륭한 것은 여성 캐릭터들이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라는 점. 그들도 실수를 했고 되돌리고 싶어 한다. 피해자인 여성이 아무 죄도 없이 깨끗해야 간신히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사회에서 <빅 리틀 라이즈>는 주인공들이 완벽하지 않은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은 극복하고 서로 연대하며 치유한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얼마나 멋진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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