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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15. 2022

암 투병기는 읽기 힘들 거라는 선입견을 배반하는  책

양선아 『끝장난 줄 알았는데 인생은 계속됐다』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지옥》에는 어느 날 갑자기 저승사자로부터 "너는 앞으로 몇 시간, 또는 며칠 후 지옥에 간다."라는 선언을 일방적으로 듣게 되는 사람들이 나온다. 한겨레에서 기자로 일하던 양선아의 암 투병기 『끝장난 줄 알았는데 인생은 계속됐다』를 펼치자마자 그 영화가 떠올랐다. 암에 걸렸다는 의사의 말을 들은 저자는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라는 억울하고 황당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저자가 다른 암 환자와 달랐던 점은 암 선고를 받은 후 바로 서점으로 달려갔다는 사실이다. 그는 실의에 빠져 울기만 하고 있다면 암이 더 악화될 것이라 생각하고 암 관련 책들을 찾아보는데 거기서 '암에 걸렸다고 반드시 죽지 않는다'는 것과 '수치는 숫자에 불과하니 수치에 일희일비하지 마라' 같은 중요한 암 관련 지식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암 발병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돌아보고 지금까지의 생각을 뒤집은 사람의 이야기다. 열심히 일하고 아이 키우며 평범(?)하게 바쁜 삶을 살던 저자는 새벽 세 시에 병원에서 혼자 깨어 반성한다. 인간이란 게 이렇게 어리석구나. 아프거나 힘든 상황이 되어야 비로소 평범한 생활을 영위할 때가 얼마나 행복한 나날들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다니.  39세에 심장마비, 40세에 암이라는 질병을 겪은 아서 프랭크가  『아픈 몸을 살다』라는 책에서 질병을 '위험한 기회'라고 한 게 바로 이래서구나. 양선아는 다짐한다. 그래, 나도 다시 그런 날들이 돌아오면 아무런 욕심 내지 않고 하루하루를 기뻐하면서 살아봐야지.

'행복은 곱씹을수록 고소해진다'라는 꼭지에서는 요양병원에  요가 선생이 '우리가  행복했던 순간을 말하는 시간을 갖는  중요한지' 대해 말한다. 누구나 살다  보면 행복한 순간보다 힘든 순간이나 뭔가 풀어야  인생의 문제들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우리 인생엔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 말고 행복한 시간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기분에 따라 몸이 바뀔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미술 치료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색채 심리 연구가 스메나가 타미오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결국 아름답다, 즐겁다고 느끼는 이미지를 자기 나름대로 떠올리면서 마음에 솟아나는 기쁨을 느끼는 "임을 알려준다. 그림을 그리면 창조의 뇌인 전두엽이 활성화되어 기력 회복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환자에게 차갑고 부정적인 내용을 얘기하는 의사와 완치는 바랄 수 없지만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얘기하는 의사 중 어느 의사가 더 나을까. 저자는 당연히 후자라고 말한다. 두 의사는 비슷한 내용을 말했지만 어떤 방식과 태도로 말하느냐에 따라 환자가 느끼는 건 천지차이다. 그래서 아픈 사람에겐 긍정적인 언어와 응원이 필요하다. "자꾸 선배가 했던 행동이나 습관에서 암의 원인을 찾지 말고 그냥 운이 안 좋았던 것이라 생각하라"는 후배의 말에 눈물을 쏟고 "몽덕이(애완견 이름)가 응원한다고 짖는다"라는 익살스러운 문자 메시지를 보내온 선배에게서 양선아가 용기와 힘을 얻는 이유다.

암 투병기라고 슬프고 억울한 얘기만 있는 게 아니다. 오랜 생활 기자 생활을 한 저자는 글을 무척 재밌고 쉽게 쓴다. 대변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암 치료 후 대변 문제로 고생을 하던 저자는 친정어머니가 권한 키위 덕분에 대변을 보고 행복이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항암 1차 이후 일주일, 똥에 죽고 똥에 산 한 주였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내게 행복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하루라면 행복하다...... 나의 행복 마지노선은 엄청 낮아졌고, 행복을 느끼는 빈도수는 늘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암에 걸리자마자 책을 찾아 읽으며 암에 대해 공부하는 저자의 태도는 중요하다. 회피하지 않고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게  회복 의지를 키우는 첫 번째 일이기 때문이다. 책 중간에 정혜신 선생의  『당신이 옳다』 얘기가 나오는데 책 뒤엔 이명수 선생의 추천사가 나온다. 둘 다 내겐 스승 같은 분인데 한 책에 나오는 게 신기했다. 좋은 책이다. 암 얘기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아프지 않은 상태의 내가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니까. 아내가 얼른 읽고 동숭동 다연한의원에 가져다 드리자고 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저자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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