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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03. 2022

사진으로 철학하는 크리에이터

김용호 Photo Language : 크리에이티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천재들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그들은 별로 노력을 안 해도 쉽게 이룬다는 선입견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천재라 불린 이들은 모두 '노력의 천재'였다. 사진가 김용호도 마찬가지다. 김용호 최초의 사진집이며 에세이인 『 Photo Language』를 펼쳐보면 그는 사진가 이전에 카메라를 든 철학자임을 알 수 있다. 철학, 즉 필로소피(Philosophy)는 인간 삶의 본질과 세계관을 탐구하는 학문 아닌가. 김용호는 단지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니라 왜 그 사진이 필요하고 그걸 통해 전달할 이야기는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그와의 작업은 까다롭고 이상하고 고되다. 그러나 결과는 늘 시대를 뛰어넘고 클라이언트가 원했던 것을 뛰어넘는다. 종종 쓸데없는 짓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는 세상에 무용한 경험이란 없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의심은 하지 않는다.

 

그는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 '중간만 하자'는 태도가 가장 독이 된다고 말한다.  그를 세상에 알린 엘칸토 카탈로그나 무크 광고부터 그는 스스로 컨셉을 정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스토리텔러가 됨으로써 전에 없던 사진들을 창조했다. 한 장의 사진이 탄생하기 전에 톨스토이적 질문이 필요하고 크리에이터는 이에 스토리텔링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쁘기만 하면 생명력이 짧다. 아름답되 메시지까지 정확해야 시간의 세례를 이겨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프로젝트는 옷 광고인데도 옷을 안 보여줄 때도 있고 광고 사진이나 콘티를 그대로 화랑으로 옮겨 전시회를 여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그에게 커머셜과 파인 아트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이는 형제들인 것이다.


그는 광고사진은 물론 인물 사진도 깊게 찍는다.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등이 출연했던 영화 《여배우들》에서는 직접 사진가로 출연까지 했고, 작고한 이어령 선생은 김지수 기자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을 위한 인터뷰를 진행할 때 늘 김용호가 찍어준 사진을 늘 곁에 두었다고 한다. 죽음을 앞둔 자신의 모습을 본질까지 파고들어 잘 담아낸 사진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이 프로젝트와 약간의 인연을 맺었기에 더욱 반가웠다(월요일에 김지수 기자를 만나는데 꼭 이 책 얘기를 해야겠다).


소프트뱅크의 창업자 손정의는 "싱귤래리티가 온다" 은퇴를 번복했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이걸 보고 김용호도 생각했다. 창작자로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세상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해야겠구나. 그가 뒤늦게 동영상을 배운 것도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라고 얘기해  어느 큐레이터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수십 년간 대한민국의 스타 사진가였지만 지금도 새로운 일을 벌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면서 로버트 카파가   유명한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것은 당신이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라는  아니라 피사체의 본질에  가까이 접근하라는 속뜻까지 독자에게 친절하게 속삭여 준다.  책은 보통 책의   값이다. 그러나 여기엔 김용호의 놀라운 사진들은 물론  사진이 태어나기까지의 밑그림들이 모두 들어 있고, 그가 생각하는 크리에이터의 자세 또한 실제 작업들을 예시로 들며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니까    권을 사면 김용호라는 사진가의 주요 작품은 물론 도슨트까지 함께 모셔가는 격이다. '소장각'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아닌가. 김용호의  Photo Language』를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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