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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21. 2019

보수동 책방거리에서 발견한 내 이름

때 이른 여름휴가 중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다. 보수동 책방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여보, 여기 당신 이름이 있어"라고 외치는 아내를 따라가 보니 거기가 바로 '낭독서점 詩집'이었다. 어제 김탁환 작가의 페이스북 포스팅 밑에 신작 [대소설의 시대]를 구하지 못해 부산에서 구해볼 생각이라고 댓글을 달았더니 보수동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이민아 시인이 구해주겠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일요일이니 당연히 영업을 안 하겠지 생각하고 책방은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국제시장 안 '돌고래 순두부'에서 브런치를 잔뜩 먹은 뒤 부평동 깡통시장 안의 커피집 '깡통시장 바리스타'에서 발레를 전공했다는 한예종 출신의 바리스타 이승환 씨와 놀고 있었다. 그러다가 배도 부르고 하니 보수동 책방거리나 괜히 걸어가보자 하고 왔다가 이 서점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낭독서점 현관에는 '책을 준비했으니 전화를 달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유리문 안쪽에 붙어 있었다. 나는 즉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고 휴대폰 메시지를 남겼더니 이민아 시인이 바로 전화를 해서 비밀장소에 책을 넣어두었음을 알려줬다. 가게 앞에 있는 신문박스 안에 소설책 두 권을 비닐포장해서 숨겨 두었던 것이었다. 이민아 시인은 친절하게도 근처에 있는 중앙성당이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가 되는 곳이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비닐포장 안엔 커피도 들어 있었다. 만약 내가 오지 않았다면 그 책은 며칠 동안 그 안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운명이었다. 우리는 일차대전 무렵의 견습 스파이라도 된 기분으로 무인 포스트에서 책을 꺼낸 뒤 책방 안에 있던 고양이의 사진을 찍고 호텔로 돌아왔다. 책값은 카카오뱅크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내가 보내줬다. 일단 호텔방에 딸린 화장실에 갔다가 다사 나가 돌아다니자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오니 몸이 무거워졌다. 한잠 자고 저녁에 나가볼까. 바쁜 일도 없고 급하게 갈 데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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