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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06. 2022

금요일의 비닐우산 습득 사건

교보문고에서 비닐우산 잃어버리신 분, 고맙습니다

광화문에서 어떤 분과 만날 약속이 생겨서 일찍 나갔다가 시간이 남길래 아내와 함께 잠깐 교보문고에 들렀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브런치 대상 수상 작가들의 사진과 책들이 한쪽 벽에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 수료생인 최은숙 작가와 그의 책 『어떤 호소의 말들』을 보니 반가웠다. 내 책 『살짝 웃기는 글을 잘 쓴 글입니다』도 글쓰기 분야 코너에 서서 선전하고 있었다.

아내와 헤어져 각자 책을 고르다가 카톡으로 "나 화장실 가"라고 했더니 아내에게서 "난 이미 화장실"이라는 답장이 왔다. 화장실에 들어가 출입문 고리에 가방을 걸다 보니 누가 투명한 비닐우산을 걸어 놓고 간 게 보였다. 금방 샀는지 상태가 깨끗했다. 내가 변기에 앉아 있는 동안 문을 노크하고 우산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돌려줄 생각이었으나 예상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누가 쫓아오며 "우산 도둑 잡아라!"라고 외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아내에게 갔더니 "당신이 오늘 긴 우산을 들고 나왔던가?"하고 묻길래 화장실에서 주웠다고 대답했다.

소설가 김진명의 에세이집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를 사서 가방에 넣고 우산을 들고 약속 장소인 광화문 스타벅스로 갔다. 아직 시간이 남아 아내는 스마트폰을 보고 나는 책을 읽었다. 김진명의 에세이는 투박하고 직설적인 문체로 이루어져 있다. 어쩌면 너무 뻔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러나 이런 게 김진명이라는 작가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는 대학 때 '인간이 쓴  책이라면 모두 한 번 읽어보자'라는 무식한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그러니 아침에 도서관이 문을 여는 시간부터 밤늦게까지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었고 그러다 보니 도서관에서 고시공부하는 사람들과 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하루 종일 문학이나 사회과학, 철학, 물리학 등의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는 김진명을 신기하게 바라봤고 김진명은 수천 년 쌓아 온 인류의 역사와 사상을 외면한 채 좁은 고시 공부에만 매달리는 그들을 측은한 인생이라 여겼다. 어떤 생각을 품고 사느냐에 따라 사람의 삶은 달라진다. 베스트셀러 소설가 김진명을 만든 건 이런 젊은 날의 독서였던 것이다.

화장실에서 습득한 비닐우산은 똑딱단추가 망가져서 자꾸 풀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나는 "아니,  사람은 이런 우산을 걸어 놓고 가면 어떡해."라고 화를 내다가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황정민이 누군가와 멱살을 붙잡고 싸우다가 미리  놓은  자리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자 구경하던 노인이 " 사람아, 멱살을  잡고 있어야지......"하고 나무라던 장면이 생각나서였다.  우산은 아내가 고쳐주었다. 어떻게 고쳤냐고 물었더니 비밀이라며 잘난 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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