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Jul 21. 2022

은행 여직원과 수다 떤 이야기

대출 연장하러 가서도 새 책 얘기를 하는 한심한 작가

대출 연장을 하기 위해 은행에 갔다.  요즘은 동네 은행 점포가 다 사라져 어쩔 수 없이 혜화동 지점까지 가야 했다. 번호표를 뽑고 한참을 기다리니 내 번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자동 연장 대상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했더니 "어차피 대출 4년째엔 은행이 한 번 나오셔야 해요."라고 창구의 여직원(대리였다)이 웃으며 말했다. "벌써 4년이나 됐어요?"하고 놀라서 물었더니 여직원은 기준금리가 올라서 이자도 많이 늘었다고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은행 직원이 내게 미안해할 일은 아닌데도 그랬다. 좋은 사람 같았다.

 

대출 연장을 위해서는 여기저기 싸인할 곳이 많았다. 내가 창구에 비치되어 있는 태블릿 PC에 이름과 싸인을 번갈아 써넣고 있으려니 여직원이 "글씨가 꼭 캘리그라피 같아요!"라고 말했다. 내가 "공처가의 캘리라는 걸 쓰긴 하는데요......"라며 인스타그램에서 캘리 쓴 걸 하나 꺼내 보여줬는데 하필 '책이 잘 팔리려면 작가가 잘생겨져야 한다'라고 했던 아내와의 대화 내용이었다. 그러나 여직원은 대화 내용과는 상관없이 글씨가 마음에 드는지 옆 자리의 직원에게도 보여주면서 좋아했고 나는 내친김에 인스타 아이디까지 가르쳐 주게 되었다.


개인소득 관련해서 직업을 묻길래 지금은 회사엔 다니지 않으며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말이 나온 김에 며칠   책이 나왔다며 스마트폰으로 『살짝 웃기는 글이   글입니다』 사진을 찾아 유리 방호벽에 갖다 댔더니 여직원이 어머, 하며  제목을 연필로 받아 적었다. 이에 신이  나는  "부부가 놀고 있습니다라는 책도 있어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제목이 재밌다는 여직원의 말에 고무된 나는  책이 드라마로 제작될 것이며 윤계상 배우가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것까지 자랑삼아 말했다. ", 여기서 이런 얘기 하고 있는  알면 아내가 야단칠 텐데."라고 뒤늦게 반성하는 척하며 한숨을 내쉬었더니 "어머, 왜요?" 라며 웃었고 "주책 떤다고요......"라는  대답에 "주책은요."라며  편을 들어주었다. 나는 여러 가지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주책은요,라고 하긴 했지만 분명 주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씨'라는 호칭이 그렇게 나쁩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