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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14. 2022

'~씨'라는 호칭이 그렇게 나쁩니까?

한국일보 칼럼 삶과 문화

이번  한국일보 칼럼에는 '' ''이라는 호칭에 대해서 썼습니다. 저는 직책이 아닌 이름 앞에  자를 붙이는  어법에도 어울리지 않고 일단 '극존칭 과소비'라는 다소 과격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생각에 찬성하지 않은 분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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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라는 호칭이 그렇게 나쁩니까?>


1990년대 사랑받았던 가수 임종환(2010년 사망)의 부고에 후배 가수 윤종신은 "나이 차가 좀 있는데 꼬박꼬박 '종신씨'라고 높여주셨던 형님으로 기억한다"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 특별할 것 없는 단신 뉴스를 읽으며 나는 엉뚱하게도 '종신씨'라는 호칭에 집중하고 말았다. 아직도 '씨'라는 호칭을 높임말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이 땅에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해서였다. 알다시피 요즘은 어디 가서 '성준 씨'하고 이름 뒤에 씨를 붙이면 '쟤가 나를 하대하는구나'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일단 밖에서 만난 사람들은 직급 뒤에 님을 붙여 부른다. 사장님 부장님 대리님처럼 직책 뒤에 님 자를 붙이는 건 너무 당연하지만 이미 높임의 의미가 담겨 있는 대통령도 '대통령님'이라 부르게 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각하'라는 존칭을 쓰지 말라고 부탁하면서 시작된 존칭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우리가 모든 사람의 이름에 님 자를 붙이는 지경이 이르렀다는 것이다. 예전에 브런치에서 "~씨라는 호칭을 거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직장 내 차별적 호칭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상사들이 남자 직원들에게는 "철수야" 또는 "김철수"라고 그냥 이름만 부르면서 여자 직원에게는 "~씨"라고 부르는 게 싫었다는 것이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씨 자를 붙이느니 차라리 반말로 불러 달라니. 씨 대신 '님'을 붙이게 된 게 언제부터였는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내 기억으로는 MBC 대학가요제에서 심사위원들을 소개하면서 "작곡가 님입니다"라고 한 게 처음 같은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1982년 세운상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로그래머들은 출력물에서 사람 이름 종성의 존재 여부 때문에 "은(는)… 이(가)…" 등으로 출력하다가 한 고교생 프로그래머가 "님"을 붙이는 해결 방안을 내놓으면서 세운상가 프로그래머들 사이에 퍼졌다는 것이다.

이후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이름 뒤에 님 자를 붙이면서 씨라는 호칭은 더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에 어떤 분이 '씨'와 '님' 호칭에 대해 질문을 했더니 '씨'를 쓸 수는 있지만 연령이 다양한 사람들이 대화하는 공간에서 '씨'를 쓰면 불쾌하게 여길 대상이 있을 수 있는 반면, '님'을 쓰면 그러한 문제는 없게 되니까 가급적 '님'을 쓰는 게 원만한 의사소통에 유익할 것이라는 답을 내고 있다.

말이라는 게 한 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것이니 굳이 '씨'를 써서 시빗거리를 만드느니 일괄적으로 '님'을 붙여 속 편하게 살자는 것이다. '극존칭 과소비'를 부추기는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님은 임금이나 선생, 과장처럼 직책을 나타내는 데 붙이는 존칭이었다. 그런데 직책을 맡지 못한 아랫사람에게 최소한의 예우를 해주느라 씨 자를 붙이다 보니 그만 하대의 의미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미 변해버린 말의 의미를 억지로 되돌려 보겠다고 외로운 독립군처럼 혼자 광야에 서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원래 그런 뜻은 아니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는 동네 친구들이나 '독하다 토요일' 멤버들끼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씨' 호칭을 쓰고 있는데 대영씨도 세미씨도 미경씨도 하대라는 생각 없이 잘 쓰고 있다. 아마 영화 '헤어질 결심'의 탕웨이에게 '탕웨이님'이라고 부르면 그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씨라는 호칭이 그렇게 나쁩니까?"


세미 씨는 이웃에 사는 연기자 임세미 씨고 대영 씨는 고양이 책방 책보냥 사장님인데 제 칼럼에 특별 출연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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