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오창도서관 '손바닥 자서전 쓰기' 대면 강연 후기
오전 6시에 일어나 준비를 해야지 했는데 5시도 못 되어 깨고 말았다.
7시 50분에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청주공항역 가는 버스를 탔는데 도착하기 30분 전부터 오늘 강연할 도서관의 사서님들에게서 문자 메시지와 전화가 쇄도했다. 오늘 내 일정에 불편함이 없도록 자동차로 마중을 나오고 나를 강연장까지 잘 데려다 주기 위해서다. 오창도서관까지 운전을 해주시는 여성 사서님의 명랑한 말소리가 빗물을 닦아내는 와이퍼 소리와 섞여서 기분 좋은 화음을 만들어냈다.
도서관에 도착하니 비가 퍼붓는 상황에도 많은 분들이 와서 내 강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강의는 '내 인생의 화양연화 - 손바닥 자서전 쓰기' 여섯 번째 시간이었다. 오늘도 열강이다. 물론 내가 열심히 해서 열강이 아니라 듣는 분들의 눈동자가 반짝이고 내 얘기에 맞춰 질문들이 쏟아져서 열강이다.
나는 첫 문장을 맨 처음 쓴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한다. 생각 나는 게 있으면 중간부터 쓰고 나중에 고쳐도 된다고 말한다. 글의 최소 단위는 문장이 아니라 문단이라고 말한다. 매일 쓰라고 말한다. 쓰기로 했던 시간이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책상 앞에 가서 앉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 글자도 못 쓰는 날이 있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재작년에 보았던 독일 영화에서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고 하루 종일 캔버스 앞에 앉아 있다가 집으로 가곤 하던 화가를 다룬 장면도 이야기한다. 영화 제목이 생각 안 나서 헤맨다((저녁에 숙소로 와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타인의 삶》을 만들었던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작가 미상》이다).
어떡하면 내 인생에서 손바닥 자서전으로 쓸 부분을 찾아낼 수 있을까, 어떡하면 다음 주까지 A4지 한 장 반 분량의 초고를 써서 낼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강연이 끝나고 마침 인터뷰 문제로 전화를 걸어온 일간지 기자와 통화를 하는 동안 사서님 두 분과 강연을 듣는 한 분이 함께 기다려 주셨다.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것이었다. 순댓국 잘하는 집으로 갔다. 줄을 서야 했고 주인이 그릇을 나를 때 섣불리 도와주려 하면 야단을 맞는 곳이라고 했다. 뜨거운 그릇을 나르느라 위험해서 그런 것 같았다. 채식을 하는 분 아니냐고 묻길래 아내만 페스코 베지터리언이라고 말씀드리며 웃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지금 점심 먹으러 식당에 막 도착했다며 전화를 끊으라고 했다. 전화를 끊었다. 뜨거운 순댓국을 맛있게 먹고 나와 같이 강연을 들었던 남자 수강생분의 차를 타고 청주 시내로 나갔다. 자신은 은퇴를 했고 오늘은 아내분이 점심 약속이 있어서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다는 고마운 말씀이 이어졌다. 그 차를 타고 청주의 인문학 네트워크 '해인네'까지 갔다. 오늘은 여기서 김해숙 선생을 만나 인사를 드리고 하룻밤을 묵어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 청주문화의집에서 '재미있는 당대 한국 소설과 영화의 만남'이라는 강연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 강연은 5 회차다. 그래서 앞으로 4주 동안 더 청주에 내려와야 한다. 운전을 해주시던 남자 수강생께서 청주에 연고가 있냐고 물어서 "아무런 연고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에서 글을 쓰려면 혼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제주든 청주든 어디든 상관없다,라고 쓰셨잖아요."라고 물으시길래 "그땐 정말 청주에 올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대답을 해놓고 보니 신기했다.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이곳 분들의 선의를 무차별적으로 받으며 살게 된 것일까.
해인네 와서 여러 선생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한 선생님이 내준 베개를 베고 잠깐 쓰러져 잤다. 일어나 보니 김해숙 선생이 감바스를 해서 상 위에 펼쳐놓고 있었다. 감바스를 배가 뜯어지도록 먹고 한숨을 내쉬었다. 비로소 창밖의 빗소리가 들렸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지금 손님방 혜민 씨와 저녁을 먹으러 동네 식당 덴뿌라에 가는 길이라며 전화를 끊으라고 했다. 전화를 끊었다.
어제 서울은 무섭도록 비가 내렸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청주에도 많이 왔다고 한다. 신항서원 옆에 있는 해인네에서 듣는 빗소리가 너무 좋다. 오늘은 이 빗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의 호의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겠다. 아차, 내일 할 강연 준비를 더 해야 한다. 내일은 정세랑의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과 할리우드 영화 《스파이더 맨: 파 프롬 홈》에 대해서 얘기하기로 했다. 강연 원고는 이미 다 써서 넘겼지만 그래도 내일 할 얘기들은 새로 정리를 해봐야 한다. 빗소리와 함께 강연안을 만들다 자야겠다. 어제 서울은 비가 많이 와서 강남역을 비롯한 남쪽이 난리가 났다. 정부는 정부가 할 일을 하고 시민들은 서로를 돕고 염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도 정치 얘기는 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청주의 빗소리를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