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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11. 2019

월요일 아침에 조조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모임 - 월조회

로켓맨

대학을 졸업하고 미술 관련 잡지사 기자를 3개월 간 했던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잡지를 만드는 일에 흥미나 보람을 별로 느끼지 못했고 또 광고 일이 너무 하고 싶어서 무작정 직장을 그만두고 부모에게 빌붙어 살며 광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공모전 등 광고 취업 준비 말고 할 수 있는 가장 사치스러운 일은 낮에 시내에 나가서 영화를 보는 것이었는데 특히 월요일 아침에 조조를 보는 맛이 아주 각별했다. 다들 월요병에 시달리며 주간회의를 할 시간에 아무도 없는 극장에 널브러져서 할인된 가격으로 개봉 영화를 보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나는 곧 '월조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월요일 아침에 조조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었는데 물론 회원은 나 하나뿐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니까.



정말 오랜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평일에 놀 수 있게 되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월조회'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월요일엔 용산에 있는 아이맥스 극장에 가서 [어벤저스 - 엔드게임]을 보았고 그다음 주 월요일엔 봉준호의 [기생충]을 한 번 더 보려 했으나 전날의 과도한 음주로 인해 포기하고 화요일 조조로 겨우 보았다. 그리고 어제 세 번째 월요일에 선택한 영화는 엘튼 존의 전기영화 [로켓맨]이었다. 엘튼 존의 노래 중 평론가들에게 가장 극찬을 받은 노래가 로켓맨이라서 제목이 이렇게 된 모양인데 아무튼 엘튼 존의 음악과 함께 청소년기를 보냈던 나로서는 꼭 한 번 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얼마 전 개봉했던 <보헤미안 랩소디>와 비교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영화는 20년 전부터 기획되었던 프로젝트라 성격이 좀 다르다. 주인공도 저스틴 팀버레이크, 톰 하디 등으로 옮겨 다니다가 이번에 태런 에저트로 낙점이 된 것이다. 엘튼 존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라는 것 정도만 알고 극장에 들어간 나는 <Goodbye Yellow Brick Road>가 피아노 버전으로 흐르는 복도 첫 장면에 등장한 태런 에저트의 모습에 압도당했다. 그는 그야말로 엘튼 존의 화신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흉내를 내는 게 아니었다. 표정이나 목소리에서 가장 엘튼 존스러운 특징들을 잡아 자신의 것으로 만든 후 '만약 엘튼 존이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충분히 연구한 후 나온 연기들이었다. 피아노나 노래 실력도 놀라웠다. 이전까지 영화에서 노래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배우는  <물랑 루즈>의 이완 맥그리거였는데 태런 에저트는 피아노 연주 실력까지 겸해져서 그보다 훨씬 더 섬세한 느낌이었다. 멀리는 <아마데우스>의 톰 헐스나 <언터처블>에 잠깐 등장했던 로버트 드 니로처럼 영화를 위해 악기를 배우거나 몸무게를 조절하는 배우들의 노력은 정말 존경스럽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힐러리 스웽크는 또 어떤가.


평생 그에게 가사를 써줬던 친구 버니(<빌리 엘리어트>에서 주인공을 했던 제이미 벨!)의 글에 즉석에서 곡을 붙여 <Your song>이라는 노래가 탄생하는 장면은 경이롭다. <Tiny Dancer>도 그런 식으로 그려지는데 나처럼 그 노래들을 사랑했던 사람들에겐 축복 같은 순간들이리라. 녹음실에서 키키 디와 즐겁게 <Don't go breaking my heart>를 부르던 모습도 사랑스럽고 엘튼 존이 화가 나서 뛰어나가며 흐르는 <Goodbye Yellow Brick Road>에서는 엉뚱하게도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브레이킹 더 웨이브>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 영화 첫 장면이던가 챕터가 바뀔 때던가 이 노래가 흐르는 게 이상하게 잊혀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엄청난 배우의 내공에 비하면 감독의 연출은 좀 구린 편이다. 약물 중독자 모임에서 펼쳐지는 플래시백을 기본으로 한 뮤지컬이다 보니 너무 튀는 연출은 좀 힘들었을 것 같긴 하다. 다만 이 영화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팝스타의 성공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재능의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성 정체성의 문제, 심리적 불안감과 공허, 외로움 등을 담아낸 점에서 매우 어른스러운 작품이기도 하다. 약물에 휩쓸리고 애인에게 버림받는 엘튼 존의 모습은 눈물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전에 다시 회복된 그의 모습과 현재의 상태를 보여주는 자막들은 관객들에게 안도감을 안겨준다. 이는 이 영화의 제작자가 다름 아닌 엘튼 존 그 자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늘 그렇듯이 월조회를 끝내고 나오면 햇볕 뜨거운 한낮의 서울 시내가 펼쳐진다. 나는 내가 혼자 영화를 보고 나왔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괴로운 오전 업무에서 잠깐 해방되어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아주 짧은 월요일의 일탈이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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