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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15. 2023

나는 사연 없는 그냥 바보

실수담을 씁니다

보통은 버스를 타고 광화문 다음 역에서 내려 기상청 건물까지 걸어가는데 오늘은 경복궁역을 거쳐 서울시민대학까지  걸어갔다. 나는 기상청 건물에 있는 서울시민대학 강사다. 2021년 11월에 1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공채 강사가 된 후 계속 강연을 했으므로 그동안 이곳을 오십 번도 넘게 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새삼 버스를 잘못 타더니, 기가 막혔다. 무슨 다른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아내와 동네에 새로 생긴 뷔페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헤어져 버스 정류장에 서서 150번이나 160, 아니면 710번을 타야지 생각하고 있다가 171번이 오니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올라탄 것이다.


버스 좌석에 앉아 아내가 SNS에 올린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 일요일 낮반 모집 요강을 읽고 있다가 문득 눈을 들어 버스 운행표를 쳐다보니 이 버스는 171번이었고 서울역사문화박물관역에는 서지 않는 차였다. 얼른 창밖을 살피니 가장 가까운 역은 경복궁역이었다. 나는 급히 정차 버튼을 누르고 경복궁역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정류장 의자에 엉거주춤 앉아 지도서비스를 켜고 있는데 웬 남성 외국인이 다가와 "Can You speak English?"라고 물었다. 아주 쬐끔 한다고 했더니 여기서 공항버스가 서는 게 맞냐고 물었다. 일어나서 버스정류장을 쳐다보니 공항버스가 서는 곳 같길래 맞다고 대답했다(Yeah, Just here). 그러다 혹시나 공항버스가 안 서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어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지도서비스는 서울시민대학까지는 20분 정도 소요된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응, 별로 멀지도 않네!" 나는 어느새 긍정적인 마인드가 되어 광화문 거리를 가로지르며 걸었다. 오랜만에 보는 김밥집 간판이 반가워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나에게 글쓰기 강연을 듣는 분들은 내가 오늘 이러고 서울시민대학까지 간 건 꿈에도 모를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사연 있는 바보는 아니고 그냥 바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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