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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03. 2023

에세이 일타강사가 된 편성준

작가가 쓰는 《에세이 한 편 제대로 쓰기》 수업 후기


어제는 제가 지난 5주간 줌으로 진행했던 글쓰기 수업 《에세이 한 편 제대로 쓰기》 마지막 강연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4주간은 수요일 저녁 8시부터 줌으로 했지만 마지막날은 저희 집인 한옥 '성북동 소행성'으로 7시 30분까지 모시기로 했습니다. 수요일 강의를 앞두고 저는 화요일부터 수강생들이 보내주신 마지막 에세이들을 A4지 위에 출력해서 찬찬히 읽어보고 일일이 코멘트를 달며 리뷰 준비를 했습니다. 이번엔 아내이자 출판기획자인 윤혜자가 '글쓰기와 책 쓰기의 차이점'에 대한 특강을 해주기로 했기 때문에 그녀의 강의가 끝난 뒤 간단하게 피드백을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덕분에 화요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수요일도 이른 오후까지 새 책 원고 두 꼭지를 쓰는 일 말고는 다른 일을 전혀 하지 못하고 강연 준비에만 매달려야 했습니다.


놀라운 건 다들 글을 너무 잘 쓰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프린트해 놓은 에세이를 집어 휘리릭 읽어 본 아내도(글을 무척 빠르게 읽습니다) 깜짝 놀라며 묻더군요. "뭐 이렇게 다들 글을 잘 써? 혹시 당신이 잘 가르친 거 아냐?" "아냐… 원래부터 잘 쓰는 분들이었어." 이런 한심한 대화를 나눈 저희 부부는 수요일 저녁 한성대입구역 이모네냉면에 가서 비빔냉면을 한 그릇씩 먹고 청소를 한 뒤 대문을 열어 두었습니다. 7시 15분부터 수강생분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15명 정원 중 사정이 생겨 미리 빠지신 두 분 말고는 전원 다 참석하신다고 했는데 막상 당일이 되자 갑자기 팀 회식이 잡힌 분과 몸이 불편해져 못 오게 된 분 둘을 빼고 총 11명이 저희 집 마루에 모였습니다.


예전에 진주문고 북토크 때 뵈었던 게 인연이 되어 에세이 수업을 받으신 학인께서는 이번 강의를 듣기 위해 휴가를 내고 진주에서 서울로 올라오시는 성의를 보이셨습니다. 양평에서 자그맣게 농사를 짓고 계시는 한 선생님은 '오크라'라는 야채를 양껏 들고 와서 모인 분들께 나눠 주시기도 했고요. 채소 말고도 와인이나 케잌 등 먹을 것을 가져온 분도 있었습니다. 나폴레옹과자점에서 파는 아이스께끼를 인원수 대로 사 오신 분까지 계셨죠. 아내가 좋아서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저희가 '하루떡'이라는 떡집에서 사 온 백설기와 물을 드신 열한 명의 학인들은 윤혜자의 강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글을 잘 쓰는 것과 책을 쓰는 것은 별 상관이 없다는 얘기로 시작한 윤혜자의 강연은  저희 집에서 6개월 과정으로 진행하고 있는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머릿속에만 있는 이야기는 아무 소용이 없다, 써라, 기록하고 꾸준히 쓰는 것만이 가치를 만든다, 라는 윤혜자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대며 책쓰기 워크숍 등록 의사를 밝힌 사람이 세 분이나 되었습니다. 윤혜자는 이미 대기자 명단이 있지만 아직 입금을 안 한 상태이니 동등한 자격을 주겠다고 하며 저의 강연을 들은 분들은 10퍼센트 할인 혜택이 있다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팰든크라이스무브라는 운동을 지도하는 김윤진 선생에게 그 운동을 좀 설명해 보라는 얘기가 나오자 다들 관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에 그동안 강을 들은 소감을 말하는 시간엔 모두들 제 강연이 좋았다고 말해서 윤혜자가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사람들 표정이 좋아서 짐작은 했지만 이토록 반응이 뜨거울 줄은 몰랐다고 하면서요. 전에 제가 줌으로 강연하는 걸 윤혜자가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끝나고 세세한 지적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이번에는 제가 강연 시간마다 외출을 하게끔 유도했거든요. 신경도 쓰이고 또 제가 의기소침해질까 봐서요.


9시 반쯤 강연이 모두 끝나고 배숙 선생님이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내밀며 싸인을 해달라고 하셨는데 앞장을 넘겨보니 이미 제 싸인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걸 뜯어내지도 않고 알리딘에 내다 판 것이었습니다. 저는 “2차 싸인은 처음입니다!”라고 웃으며 제 싸인 위에 새로운 싸인을 해드렸습니다. 맥줏집 뒤풀이는 한두 분 가실 거라 생각했는데 일곱 분이나 손을 드셔서 모두 아홉 명이 한성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삼통치킨으로 몰려 갔습니다. 원래는 '꼬꼬댁꼬꼬'로 가려고 했으나 아홉 명이 한꺼번에 앉을자리가 없다고 해서 삼통으로 갔습니다. 치킨과 골뱅이, 맥주를 시켜 먹고 마시며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했습니다. 윤혜자가 어떻게 그렇게들 글을 잘 쓰셨냐고 감탄하자 이번 강의가 유난히 좋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특히 김윤진 선생은 "첫날부터 편성준 작가님이 에세이 쓰는 법을 일터강사처럼 일목요연하게 찝어주고 나중에 요약본까지 보내줘 너무 큰 도움이 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졸지에 '에세이 쓰기 일타강사'가 되었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윤혜자가 맥주값을 카드로 계산했지만 결국 엔분의 일로 내기로 했습니다. 흐뭇한 밤이었습니다. 오신 수강생들깨 인정받은 것도 기쁘지만 더 좋은 건 모두 글쓰기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울러 열심히 준비하면 통한다는 글쓰기 강연자로서 자신감을 얻은 것도 큰 수확이었습니다. 제 강연을 열심히 들어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또 다른 강의로 뵙죠(현재 3주짜리 ‘리뷰 쓰기로 가볍게 시작하는 글쓰기’ 수강자 모집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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