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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22. 2019

부산은 맛있었다

부산에서 맛있었던 집 몇 군데 소개합니다

<부산은 맛있었다>  

해마다 5월 하순이면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5월에 만난 커플이고 5월에 결혼식을 했고 또 제 생일도 5월에 있는데 이들이 23일부터 25일까지 나란히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부산에서 일주일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흔히 경상도 음식은 먹을 게 없다고들 하죠. 전라도에 비하면 확실히 그렇죠. 저도 예전에 경상도 친구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국은 다 식었고 음식 재료와 양념들이 하나도 안 섞이고 다 따로따로 노는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그렇다면 경상도 사람들은 평생 맛없는 음식만 먹고사는 걸까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행은 먹는 게 반이라는데 맛없는 것만 잔뜩 먹고 올 순 없잖아요. 그래서 아내와 저는 맛있는 집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원래도 미식가이긴 하지만 장을 담그고 김장을 하면서 더 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아내가 꼼꼼하게 검색을 했고 또 맛집 지도를 만들 정도로 까다로운 입맛과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옆집 총각(아랫동네로 이사를 갔지만 아직도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의 수첩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희들이 일주일 간 부산에서 다녔던 음식점 중 기억에 남는 곳 몇 군데를 소개합니다.




일식 다이닝 <유노우>(*지금은 광안리의 '제로 베이스'로 바뀌었답니다)

아내가 인스타그램에서 눈여겨봤던 곳이랍니다. 비가 살짝 내리는 저녁에 갔는데 처음엔 사장님 혼자 바쁘게 움직이더니 곧 아름다운 여직원도 나타났습니다. 이 분은 식당의 첫 스텝인데 5살 때 고열로 청력을 잃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수술도 하고 보청기를 끼고 있어서 소통을 할 수 있지만 작은 소리는 잘 못 듣는다는 얘기를 저도 인스타그램에서 읽었습니다. 사장님이 어렸을 때 친구나 동네 형 등 장애인들과의 좋은 추억이 있어서 얼굴도 보지 않고 청해서 이 분을 뽑았다는데 결과적으로 너무 예쁘고 손님들을 세심하게 살피는 성실한 직원이었습니다.

생선회 모둠과 키조개튀김 등을 시키고 술은 사케를 주전자에 담아 달라고 했더니 날렵한 주석 주전자가 나왔습니다. 주석이 차가운 기운을 오래 지켜준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회도 맛있고 술도 좋았습니다. 이곳은 주방장 혼자 요리를 하고 매일 장도 봅니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사장님인 유병찬 요리사가 나온 '츠지요리학교'(가게 앞 명판에 표시가 되어 있음)는 커리큘럼도 빡세고 되게 힘든 곳이라고 합니다. 금태 구이도 맛있었고 서비스로 나온 죽순 튀김과 표고 새우튀김도 최상이었습니다. 사장님은 원래 충청도가 고향인데 부인이 부산 사람이라 부산에 정착하게 되었고 곧 둘째 딸이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국제시장 근처에 있습니다. 부산 중구 광복중앙로 14-13  


복지리탕 <초원복집>

1990년대 초에 김기춘 일당이 이곳에서 부정선거 모의를 한 게 녹음본으로 유출되어 유명세를 탔던 곳이죠. 숙소에서도 가깝고 해장도 해야겠기에 생일 아침에 들렀습니다. 복지리 두 개에 대선소주 한 병을 시킨 아내가 뒤늦게 복초회도 하나 시켰습니다. 지리탕은 깔끔했는데 식초를 한 방울 넣었더니 국물의 풍미가 더 깊어졌고 복초회는 쫄깃하니 별미였습니다. 할 수 없이 소주를 한 병 더 마시고 나왔습니다.



장어덮밥의 귀족 <동경밥상>

광안리 금련산역 근처 장어덮밥 전문점인데 역시 아내가 인스타그램으로 눈여겨봤던 집입니다. 처음엔 음식점보다 요리사에 더 관심이 많았답니다. 이 집 사장님이 가끔 올리는 먹방이 아주 훌륭했으니까요.

서울에서 인스타로 예약을 하고 방문했는데 부산 지리에 어두운 사람에게도 찾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예약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식당으로 들어서는데 요리사께서 화분에서 산초잎을 따고 계셨습니다(이 산초잎 중 하나는 우리가 주문한 민물장어덮밥에 공손히 얹어졌음). 실내는 단정하고 쾌적했으며 잔잔한 재즈 음악도 좋았습니다.

나고야식 민물장어덮밥과 동경식 바다장어덮밥을 주문했습니다. 작지 않은 합의 단면을 빼곡하게 채운 장어의 양이 맘에 들었고 바닷장어와 민물장어 모두 각각의 식감을 충분히 살린 맛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밥을 정말 잘해서 맨밥만 먹어도 훌륭할 것 같았습니다. 옆 테이블엔 지글거리는 햄버거 스테이크가 왔는데 너무 맛있어 보여서 우리도 배만 좀 덜 불렀으면 분명 햄버거 스테이크를 하나 추가했을 거라고 아내가 말하며 웃었습니다. 동경밥상 주방장님의 실물은 인스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잘생겼습니다. 먹방 영상 편집도 모두 스스로 한답니다. 광안리 갈 일 있으면 꼭 한 번 들러 보십시오.


돼지국밥의 숨은 성지 <의령식당>

돼지국밥과 수육을 잘한다고 '옆집 총각 리스트'가 알려준 집입니다. 해운대역까지 가서 '해리단길'로 접어들면 찾을 수 있는 집입니다. 아주 작은 돼지국밥집인데 들어설 때 입구에서 돼지 누린내가 전혀 안 났습니다.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쌉니다. 아내는 따로국밥을 시켰고 저는 돼지국밥을 시켰습니다. 물론 수육 중짜와 대선소주도 한 병 시켰죠. 수육이 깔끔했고 김치와 깍두기도 맛이 훌륭했습니다.

뒤이어 나온 국밥은 국물이 맑았습니다. 저는 부추와 새우젓만 조금 넣고 다대기는 아예 넣지 않았습니다. 청량한 국물 맛을 해치기 싫어서였죠. 아내가 된장을 보니 이 년도 안 된 햇된장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작년에 담근 장이라도 합니다. 일 년에 여덟 말을 담그는데 먹다가 부족하면 처제네 것과 처형네 것을 다 가져다 먹는다고 합니다. 밥과 수육이 맛있어서 소주는 한 병만 마시고 건전하게 마감을 했습니다. 부산에 와서 깔끔한 돼지국밥을 원하는 분이 있다면 저는 이 집을 추천하겠습니다.


(제가 이날 브런치에 올린 의령식당 포스팅이 다음 포털 메인화면에 노출되어 엄청 공유가 되었더랬습니다)



전복죽의 투썸즈업 플레이스 <첫집해녀할매>

부산에서 여행사를 운영하시는 사장님이 자신의 단골이라며 저희 부부를 데려간 집입니다. 산낙지도 싱싱하고 맛있지만 이 집의 진짜 별미는 전복죽입니다. 말 그대로 죽입니다. 너무 맛있어서 숙소로 포장을 해와 다음날 점심때도 먹었습니다.



유쾌한 바리스타들 <깡통시장 바리스타>

국제시장 안 '돌고래 순두부'에서 브런치를 잔뜩 먹은 뒤 부평동 깡통시장 안의 커피집 '깡통시장 바리스타'에 갔습니다. 잘생긴 청년들이 커피가 담긴 커다란 락앤락 통을 들고 나와 춤을 추며 블랜딩을 하고 있었습니다.

카운터 안에 있는 남자분에게 양손에 한 문신이 멋있다고 말을 걸었더니 한예종에서 발레를 전공한 바리스타 이승환이라고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부상 때문에 발레리노의 꿈을 접긴 했지만 커피를 워낙 좋아해서 깡통시장에 이런 가게를 냈다고 합니다.

오는 손님들 모두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유쾌한 커피숍이었습니다. 커피맛도 좋습니다.



해운대 전통시장 칼국수 <신토불이 분식>

해운대 전통시장 안에 있는 흔하디 흔한 분식점인데 뭔가 간판에서 포스가 느껴져서 들어갔습니다. 제면을 직접 한다 하고 메뉴도 단출합니다. 칼국수, 비빔국수, 김밥이 전부입니다. 우선 칼국수 면발이 좋습니다. 반죽한 후 하루 이틀 정도 숙성을 시키는 게 틀림없습니다.  비빔국수도 칼국수면입니다. 관광객보다는 토박이들이 많이 가는 식당일 듯합니다.


(신토불이 분식에 대해 아내가 쓴 글도 이 날 다음 포털 메인 페이지에 노출되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죠)



정직하고 우직한 메밀국수 <면옥향천>

점심 때면 늘 길게  줄을 서는 곳. 줄 서기가 싫어서 오후 한 시 넘어 해운대에서 출발했는데도 대기하는 손님들이 몇 팀 있더군요. 아내는 메밀 100퍼센트 순메밀 모리소바와 유부초밥을, 저는 비빔메밀국수와 돈가스를 주문했습니다. 순메밀국수는 간도 좋고 향과 맛도 좋은 츠유에 잘 뽑은 메밀을 적셔 한입 크게 먹는 맛이 일품입니다. 메밀향이 살아있고 부드럽게 잘리는 면발의 탄력도 좋습니다.

제가 주문한 일반 메밀은 순메밀보다 면발은 약간 굵고 더 탱탱했습니다. 비빔양념 맛도 너무 달지 않고 적절했습니다. 이 집은 어린이 손님들을 위한 카레고로케와 돈까스도 비장의 무기입니다. 면을 직접 제면하며 메밀 농가와 독점계약을 맺어 최상의 메밀을 공급받고 있다고 합니다. 벡스코역 6번 출구 쪽에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방금 아내가 하는 말이 그 때 면옥향천에 대해 쓴 글도 다음 포털 메인에 노출되었다고 합니다. 전 몰랐는데)



쌈 싸 먹는 횟집 <경북횟집>

해운대에서 송정리 쪽으로 가다 미포 바닷가에서 만날 수 있는 횟집입니다. 보통 회는 상추나 깻잎에 싸 먹으면 맛을 망친다고 해서 와사비만 살짝 얹어먹곤 하죠. 그런데 여긴 특이하게도 회와 밥까지 함께 싸 먹는 시스템입니다.

저도 처음엔 이게 무슨 짓이냐 하며 손사래를 쳤는데 막상 먹어보니 그 맛이 남다릅니다. 회는 회대로 밥은 밥대로 다 고유한 맛이 느껴집니다. 김치도 밥도 맛이 좋은 게 경상도 음식 같지 않은 깔끔함을 자랑합니다. 아내나 저나 스키다시 나오는 걸 싫어하는 편인데 이 집은 불필요한 스키다시가 없습니다.

일인 당 55,000원입니다. 아내는 35,000원 할 때 왔었다는데 당시에도 주변에서 가장 핫한 횟집이었다고 합니다. 돈값을 하는 집입니다. 강추합니다.



골목에 숨어있는 맛집 <진주집>


옆집 총각이 추천한 추어탕집 <진주집>에 아침 먹으러 왔는데 아내가 병어회 작은 걸 시키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대선소주도 한 병 시켰습니다. 살짝 얼린 병어회가 참 별미입니다  추어탕도 맛있고 밑반찬들이 예술입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작은 간판을 따라 들어가십시오. 멋진 한끼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주소는 중앙동1가 24-4입니다.



세계 1등 바리스타 <모모스>

바리스타가 세계 커피 대회에서 1등을 해서 화제가 되었던 곳이라 호기심을 못 참고 갔었습니다. 매장이 엄청 크고 사람도 무척 많더군요. 커피는 맛있습니다. 그러나 놀라 자빠질 정도로 맛있는 건 아니고 기본 이상은 되는 정도입니다. 부산 사투리가 심한 중년 여성들이 너무 크게 떠드는 바람에 커피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다가 결국 금방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냥 한 번 돌아보는 코스 정도로 생각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시장 구경의 즐거움 <부산어묵>


깡통시장을 돌아다니다가 길에서 서서 사먹는 어묵의 맛도 참 좋습니다. 저와 아내 둘 다 어묵을  처묵처묵하며 돌아다녔습니다.


아, 옛날이여 <개미집>

국제시장 안의 개미집, 하면 먹어준다는 게 예전의 평가였는데 다시 가본 개미집은 전혀 감흥이 없더군요. 예전엔 산낙지가 나오더니 이젠 냉동낙지였고요. 주인이 바뀐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비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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