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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23. 2019

그대 안의 블루 감독이 연 '파란 책방'

이현승 감독, 양양에 서점 겸 북카페 '파란 책방'을 차리다


서핑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머지 양양에서 서핑 영화까지 찍은 현승이 형이 얼마 전 서점 겸 북카페를 열었다는 얘기는 들어 알고 있었다. 영화감독인 형은 나의 대학 서클 '뚜라미' 선배님이다. 안 그래도 서점에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양양군 인구리에 성북동 사는 후배가 요즘 머물고 있어서 서핑을 좀 배워보려고 왔다가 저녁에  '엉클 서프' 파티장에서 현승이 형을 만났다. 현승이 형은 서퍼들을 위해 막걸리 한 말을 가져왔고 오광록 배우 커플도 함께 와서 놀았다.


어제는 난생처음으로 파도타기를 배웠다. 나의 서핑 선생님은 거제도 사나이 이웅 씨였다. 바다는 서핑 보드를 든 사람들과 햇빛으로 하루 종일 반짝였고 우리는 부서지는 파도를 질리지도 않고 계속 쳐다보았다.

양양의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생각했다. 카뮈가 지중해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자살했을 거야. <시지프스의 신화>를 썼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자살에 대해 심사숙고하더라도 이런 햇볕 아래서는 그런 생각 따위는 다 증발해 버리고 만다. 카뮈는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다음날 아침 일곱 시쯤 산책을 하다가 어제 못 갔던 서점 겸 카페  '파란 책방'에 갔더니 문이 닫혀 있었다. 낮에 다시 갔다. 현승이 형이 책방 앞 벤치에 앉아 고객인지 친구인지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안으로 들어가 책들을 구경했다. 오른쪽 책꽂이엔 파는 책들이, 왼쪽엔 읽을 책들이 꽂혀 있었다. 이문열 삼국지 열 권 한 질이 만 원이었는데 7,000원으로 할인 표시가 되어 있었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서핑을 그림으로 해설하는 번역서를 한 권 사서 나왔다. 책값은 가게 안에 있는 돈통에 넣고 나왔다. 이 곳은 무인 서점이라 책값도 음료값도 현금으로 내고 가야 한다.


현승이 형은 늘 트렌드를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80년대 후반에 홍대 앞에서 반바지 위에 정장 재킷을  입고 돌아다닌 사람은 형 말고는 없었고 아무도 자동응답기를 사용하지 않던 시절에도 집에 전화를 걸면 "네  이현승입니다. 너무 당황하지 마시고 삐 소리가 나면 메시지를 남겨주세요"라는 멘트를 선보이던 모던 보이였다. 그런 형이 누구보다 먼저 양양에 와서 서핑 문화를 주도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서울로 돌아오기 직전에 서퍼들이 오는 카페에서 노닥거리다가 마침 서핑을 마치고 물을 뚝뚝 흘리며 걸어오고 있는 현승이 형을 만나 인사를 했다. 오광록 씨도 날씬한 몸으로 서핑 슈트를 반쯤 벗고 머리의 물을 털고 있었다. 우리는 그 옛날 반바지에 정장이나 자동응답기 얘기를 하며 함께 웃었다. 현승이 형은 스노보드나 다른 비슷한 스포츠에 비해 서핑은 파도가 늘 달라서 그 느낌이 더 각별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핑을 하면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다고도 했다.


현승이 형 가게에 놓을 책을 몇 권 가져오려고 했는데 고속버스를 타고 오느라 그러지를 못했다. 나중에라도 우체국 택배로 보내드리려고 주소를 물었더니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인구길 60-7 파란 책방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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