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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24. 2019

월요일 아침에 조조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모임 - 월조회

내겐 너무 부담스러운 착함 - [행복한 라짜로]


내가 무슨 말끝에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나 스티븐 달드리의 [빌리 엘리어트], 리처드 커티스의 [러브 액츄얼리]  같은 영화가 싫다고 하면 사람들은 기겁을 하고 나를 쳐다본다. 자기에겐 인생영화나 다름없는 작품들인데 너는 무슨 이유로 감히 이런 명작들이 싫다 잘난 척을 하는 것이냐. 그러나 대답은 간단하다. 영화 밑에 흐르는 감성이 너무 따뜻하고 착해서 감당이 잘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월조회에서 본 영화 [행복한 라짜로]도 내겐 그런 영화였다. 이 작품은 지난주에 우연히 잠깐 틀었던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영화 칼럼니스트 김세윤이 추천하는 걸 듣고 '꼭 봐야지'하고 점찍어 두었던 작품이었다. 특히 내가 봐야지 하고 결심했던 부분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이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보았으면 하고 뒤늦게 자신의 이름을 제작자 명단에 올렸다는 대목이었다. 마틴 스콜세지가 보장하는 영화라면 볼 만하지 않겠는가.

지난 주말 양양에 가서 난생처음 서핑을 배운 탓에 월요일 아침엔 온몸이 쑤시고 결렸다. 어제 양양 '파타고니아' 옆에 있는 식당 '테일러'에서 샌드위치와 파운드케이크를 간식으로 먹으며 예매를 해둔 대로 아침 아홉 시 반에 혼자 대학로CGV로 달려갔다. 상영관이 워낙 작았기에 지난 주나 지지난 주처럼 나 혼자 극장을 독차지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도 있었으나 이 영화는 마니아들에게 소문이 나서 그런지 월요일 조조인데도 관객이 여덟 명이나 되었다.

이탈리아의 산골 마을에 있는 담배 농장에서 '남작부인'에게 노동착취를 당하며 사는 순진한 사람들 속에 라짜로라는 일 잘하고 착한 청년이 있었다. 모토로라 핸드폰을 쓰던 시절이니 아무리 늦게 잡아도 1980년대 말인 것 같은데 사람들은 어떤 계기로 소녀가 경찰에 신고하기 전까지 바깥세상일을 전혀 모른 채 단절되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고로 절벽에서 떨어진 라짜로가 간신히 살아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다 떠나고 라짜로에겐 세월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젊음과 담담함이 남아 있었으니...

영화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수식어가 말해 주듯이 담배농장에서 벌어진 '엄청난 사기극'(스크랩 해놓은 신문기사의 헤들라인에 따르면)과 그로 말미암아 '타임 리프' 상태가 된 라짜로의 신비한 행적을 따라간다. 그런데 나는 그런 라짜로의 모습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못마땅했다. 이건 너무 우화적이지 않은가. 심지어 종교적이기까지 하다(특정 종교 냄새는 전혀 나지 않지만). 특히 라짜로의 초월적인 미소와 조용한 헌신이 그렇다. 마지막에 그가 은행에 가서 순진한 요구를 하다가 새총을 든 은행강도로 오인받은 뒤 사람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는 장면은 그래서 매우 슬프면서도 불편했고 그 뒤에 늑대가 등장해서 라짜로를 위로하더라도 나에게까지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내가 앉은 라인의 노부부가 일어서며 자기들끼리 얘기를 주고받는 걸 들었다. 아주머니가 "왜 행복한 라짜로야?"라고 물으니 남편은 "늘 행복하잖아. 라짜로는."이라고 대답했다. 초월적인 존재라 그런 것이다. 나는 그 지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간은 초월적인 존재가 되기 힘들다. 아무리 마술적 리얼리즘을 표방하더라도 그렇다. 예전엔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해결점이 필요하면 신이 개입해서 사건을 종결해 주곤 했다. 이걸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한다. 아니면 원래 다른 행성에서 오거나 부모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초능력을 타고나 할 수 없이 지구를 지켜야 하는 운명을 지닌 주인공들도 있다. 이건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들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순수하고 구전동화처럼 표현된 주인공이 라짜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라짜로에겐 잘못이 없다. 그런 착한 캐릭터를 부담스러워하는 내가 문제다.

어쨌든 이 영화는 칸영화제 각본상을 탄 작품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은 게 틀림없지만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수상이기도 하다. 극장을 나서며 생각했다. 나는 아무래도 착하게 살긴 글렀어. 이런 착한 영화보다는 게걸스럽고 수다스러운 쿠엔틴 타란티노나 못돼 처먹은 라스 폰 트리에 영화들이 늘 더 재미있는 걸 보면.


어쨌든 어벤저스:엔드게임, 기생충(2차 관람), 로캣맨, 보희와 녹양에 이어 행복한 라짜로까지 오늘도 월조회는 무사히, 장엄하게 계속 이어지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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