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함과 진심의 화학 작용이 만든 영화

조현철의 너와 나》 리뷰

by 편성준

미끄럼틀처럼 생긴 그릇에 샤부샤부 칼국수를 내려 먹으며 엄마는 딸에게 얄미운 소리를 하다가도 '빨갛게 익은 수박'이 나온 태몽 이야기를 하며 웃고, 아빠는 딸의 방으로 쫓아 들어가 너스레를 떨다가 그녀의 발에 밀려 쫓겨나는데 이 장면에서 유독 눈물이 터지는 이유는 그 딸 세미가 다음날 수학여행 가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현철 감독의 데뷔작 《너와 나》를 일요일 낮 명동씨네라이브러리에서 보았다. 워낙 뛰어난 영화라고 소문이 나서 '잘 만들었겠지' 생각은 하고 들어갔지만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조현철의 공력은 만만치 않았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직접 보여주지 않고도 충분히 비극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창작자가 먼저 눈물을 흘리면 삼류가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영리함에 힘을 주는 또 다른 요인은 영화가 인물들에게 접근하는 진심 어린 태도다. 동성 고등학생 간의 애정을 확인하는 단 하루의 이야기인 이 영화는 적재적소에 배치된 상징과 아이디어들 덕분에 개인적인 서사를 넘어 보편적 슬픔으로 확대된다. 초반 빌드업이 좀 긴 느낌이고 화면의 색보정도 너무 날아서 마음에 안 들었지만 수학여행 전날 밤 병원으로 몇 번을 다시 돌아오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행복해하던 하은과 세미의 모습은 충분히 사랑스러워 그만큼 슬프다.


주연 배우 박혜수와 김시은 말고도 박원상, 강애심 등 좋아하는 배우들의 호연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특히 '찌질한 남자'로 나온 박정민의 연기는 눈이 부셨다. 영화 음악도 참 좋았는데 막상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땐 침묵으로 일관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런 영화는 좀 호들갑을 떨며 강추를 해도 될 것 같다. 어차피 인디 영화라 수십만 명밖에 보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논리는 잔인하다. 그러니 늦기 전에 어서 극장으로 달려가셔서 '영리함과 진심의 화학 작용'을 목격하시기 바란다. 자칫 도덕적 의무감에 짓눌리기 싫은 분들은 그냥 조현철이라는 신인 감독의 창의성을 구경한다는 마음으로 가셔도 좋을 것 같다. 서른 살 먹은 박혜수가 여고생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는 것 역시 좋은 관람 포인트다. 뭐, 결국 당신도 감동하고 말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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