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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09. 2019

갈비뼈가 아팠다

대놓고 해보는 안산의 정형외과  <에이스병원> 광고

갈비뼈가 아팠다. 아담도 아닌 내가 갑자기 갈비뼈가 아픈 이유는 서핑 때문이었다. 운동신경이 둔한 내가 지지난 주 양양 가서 난생처음 서핑을 배울 때 보드에 몸이 부딪히면서 갈비뼈를 조금 다친 모양이었다. 그다음 주에 가서 또 서핑을 할 때도 아프긴 했지만 그냥 타박상인 줄 알고 참고 탔는데 서울로 돌아와서도 통증이 좀처럼 사라지질 않는 것이었다.

"갈비뼈에 금이 간 것일 수도 있으니 에이스병원 정 원장님한테 가봐."

아내가 내게 말했다. 정재훈 원장은 혜민이 아빠 홍순성 소장님 덕분에 알게 된 우리나라 허리 통증의 대가요 에이스인 의료인이다. 서울에서 허리 치료로 매우 유명한 병원에 근무하다가 몇 년 전 안산에 에이스병원을 세워 계속 진료를 하고 있다. "에이, 거긴 안산인데. 너무 멀잖아..."  라고 말하다 생각해보니 요즘 회사도 다니지 않고 평일에 팽팽 노는 내가 굳이 안산이 멀다 할 이유가 없었다.

당장 정 원장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월요일 점심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에 월조회로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을 혼자 보고 나왔더니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안하지만 오늘 오후에 누군가를 급히 만나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예정에 없는 일이지만 나름 다급한 사정이라 외면할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정 원장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내 진료를 하루 미루고 아내가 부탁한 사람을 만나러 갔다.

정 원장은 내일 하루 종일 수술 일정이 잡혀 있으니 오후 두 시반 정도에 잠깐 만나 엑스레이와 CT를 찍어보자고 했다. 저녁에 누울 때 나름 피곤한 하루여서 그랬는지 평소보다 갈비뼈가 더 아픈 듯했다. 통증이 더 심해진 건 아니고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그런 모양이다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화요일엔 꼭 병원을 가야지 다짐하며 잤다.

화요일 아침, 동숭동에 있는 시립체육관 수영 수업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아내가 싸놓은 김밥을 점심으로 먹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고잔역까지 한 시간도 넘게 걸린다고 해서 전날 산 권여선의 신작 소설 [레몬]도 챙겨 넣었다. 전철 앱에서 고잔,이라 쓰인 곳을 확인하니까 아내가 어제 "오,수정에서 정보석이 물어보던 곳이네?"라고 말하던 기억이 났다. 고잔이 어디예요?라고 정보석이 지나가던 남자에게 물으니까 노선도를 확인해 보세요,라는 싱거운 대답이 돌아오던 장면이 있었다.

4호선을 타고 소설책을 반쯤 읽을 때까지 달리니 고잔이었다. 전철에서 내려 99-1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이상해서 옆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내가 내릴 역을 지나쳤다는 것이었다. 다시 내려 길을 건너 확인해보니 애초에 거꾸로 탄 것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여유 시간을 두고 길을 나섰으나 결국 약속시간보다 십 분 정도 늦게 병원에 도착했다.

정 원장은 정말 바빴다. 원장님이 수술을 하고 있는 동안 기본 서류를 작성하고 엑스레이실 앞에서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나타나 웃었다. 술집에서만 만나다가 병원에서 마주치니 인상이 달라 보였다. 정 원장이 시키는 대로 엑스레이와 CT 촬영을 하고 진료실에서 만났다.

왜 아프냐고 묻길래 서핑을 하다 다쳤다고 했더니 와하, 웃었다. 다른 사람이 그런 소릴 하면 몰라도 형님이 서핑을 하시다니. 나도 좀 황당하긴 한데 우리 동네에 서핑을 좋아하는 배우가 살아서요,라고 얘기를 하며 박호산 배우를 얘기했더니 엑스레이를 살피던 모니터 화면을 내리고 인터넷을 띄워 바로 박호산을 검색했다. 사실은 김혜나라는 배우와 그 전 주에 먼저 갔었구요,라고 말했더니 이번엔 김혜나의 사진을 검색했다. 의사가 진료시간에 환자와 죽이 맞아 배우 사진이나 검색하는 걸 간호사니 환자가 알면 어떡하나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정작 정 원장 본인은 태연했다.

우리는 박호산이 나온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제작했던 박호산 주연의 '화재예방 공익광고'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었다. 요즘 도통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다고 엄살을 떨었더니 그래도 형님은 늘 재미있게 사시던데요,라고 말하며 웃는 정 원장이었다. 함께 시시덕거리며 농담을 주고받던 정 원장은 엑스레이와 CT 사진을 확대해 보여주며 내 갈비뼈에 금이 좀 갔다고 얘기할 땐 다시 의사로 돌아와 있었다. 나도 환자의 눈빛이 되어 의사 선생의 얘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귀담아들으려 애를 썼다. 자고 일어날 때도 통증이 꽤 있었을 텐데 어떻게 참았냐고 묻길래 그냥 참았다고 대답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어지간히 둔한 환자다. 삼 주일치 약을 처방해 주며 혹시 보험이 있느냐고 묻길래 한 달에 팔만 원쯤 내는 실비보험이 있다고 했더니 보험료를 청구할 수 있는 진단서를 끊어주겠다고 했다. 난 맨날 보험료만 내고 치료비를 타본 적이 별로 없어서 신기하고 고마웠다.

원무과에서 진료비를 계산하는데 직원이 보험 청구용 진단서 비용은 정 원장님이 개인적으로 부담하시는 거라고 귀뜸을 해주었다. 진단서 비용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만 원이라고 했다. 고맙고 염치없는 생각이 들어서 어이쿠,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약국에서 약을 타고 커피숍에서 잠깐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내려가 커피를 시켰을 때 정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급한 환자를 잠깐 보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괜히 바쁜 사람 보자고 한 거 아닌가(물론 정 원장이 먼저 커피를 마시자고 하긴 했지만) 걱정을 하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곧 정 원장이 내려와 내 커피 결제를 취소하게 하고 자기가 다시 계산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라고 극구 만류를 했으나 자신이 계산을 하면 더 싸다고 하면서 굳이 커피값을 취소시키더니 에그 타르트도 추가로 두 개를 더 주문했다. 삼천 원짜리 커피가 더 싸 봐야 얼마겠는가. 게다가 자신은 커피를 마시지도 않으면서 에그 타르트까지.

에그 타르트를 먹던 정 원장이 또 전화 통화를 하더니 급한 환자를 보러 가야 한다면서 악수를 청했다. 나는 정 원장의 급한 뒷모습을 바라보고 멍하니 있다가 이왕 이렇게 된 거 가는 길에 병원 소개글이나 하나 쓰자고 결심을 했다. 그 생각을 하자 병원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은 게 생각났다. 다시 메인인 이 층으로 올라가 로비와 진료실 등을 찍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이 글을 썼다. 원래 의도는 병원 광고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내가 워낙 그런 쪽에 문외한이다 보니 '메디컬 팩트'는 하나도 쓰지 못하고 정 원장의 인간적  면모에 대해서만 왜곡해서 쓰게 되는 기이한 글이 되고 말았다.

아무튼 오늘은 안산의 에이스병원에 가서 아픈 갈비뼈를 돌본 의미 있는 날이었다. 모쪼록 허리 통증이나 뼈 관련 사항이 생기면 안산의 에이스병원을 기억하시라. 실력도 인간성도 최고인 정형외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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