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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11. 2019

충무로 뮤지컬영화제에서 만난 [오발탄]

이런 고급진 영화제가 전좌석 무료라니!


영화 [똥파리]나 [산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물론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도 마지막에 변호사로 출연한 적 있던 배우 이승연과 친하다. 며칠 전 승연이 충무로 뮤지컬영화제 티켓이 있다며 아내와 내게 카톡을 해왔다. 개막작으로 유현목의 [오발탄]을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뮤지컬 영화제도 있네. 근데 왜 개막작이 뮤지컬도 아닌 [오발탄]이야?" 라고 중얼거리긴 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가기로 했다.

수요일 저녁 충무아트홀에 가서야 의문이 풀렸다.  올해 4회째인 <충무로 뮤지컬영화제>는 유현목 감독 타계 10주년이자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으로 우리나라 최고 영화를 뽑을 때마다 1위를 도맡아서 하던 작품 [오발탄]을 개막작 '씨네 라이브' 형식으로 상영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씨네 라이브란 원본 영화를 틀면서 반주와 더빙 등을 현장 공연으로 함께 진행하는 방식을 말한다. 김진규, 최무룡 등이 나오는 흑백영화는 KBS성우극회 회원들의 연기와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다시 태어난 게 된 것이었다.

배우 오만석 사회로 진행된 행사는 개막공연 '올 댓 포시'부터 초대박이었다. 매우 절도 있으면서도 예술적인 무용수들의 춤과 노래는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특히 커튼콜에서 보여준 안무감독 서병구의 즉석 맛봬기 공연은 백미였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행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쾌감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를 시작하기 전 승연이 이 행사의 예술감독인 김홍준 감독님을 우리 부부에게 소개해 주었다. 나는 그가 구영회라는 필명으로 '영화에 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이라는 글을 쓸 때부터 팬이었다고 말하며 악수를 청했다. 이장호 감독이 멋진 패션 센스를 자랑하며 나타났고 영화 기자 오동진 씨, 이무영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위원장의 모습도 보였다.


 1부 쇼가 끝나고 본 영화 상영 직접 유현목 감독의 부인인 박금자 여사께서 나와 당시 상영금지작이었던 작품을 이런 자리에서 다시 보게 되니 감개무량하다는 인사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 이장호 감독, 김홍준 감독 등을 하나하나 일으며 세우며 인사를 해서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오케스트라와 성우들을 제외한 모든 곳이 어두워지면서 영화가 시작되었고 관객들은 한꺼번에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놀라운 작품이었다. 완전히 계 탄 기분이었다. 아내와 나는 "1961년도에 어떻게 저런 작품을 만들 수가 있지?"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거의 60년 전 영화였지만 시나리오, 연기, 미장센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향취와 철학적 고민의 흔적들이 작품 전체에 흘러넘쳤다. 전쟁 직후 궁핍하고 서러웠던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고민과 신산한 삶의 흔적들이 흑백 화면 속에 너무나도 훌륭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나는 예전에 이 영화를 어디선가 휘리릭 지나가는 것처럼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107분 내내 집중해서 보니 전혀 새로운 작품이었다. 더구나 KBS성우들이 실시간으로 열연한 더빙 목소리 연기는 흡사 외화를 보는 것 같은 이상한 소격 효과까지 주며 작품을 더욱 새롭개 만들었다. 조윤성 음악감독이 이끄는 심포닉 앙상블과 재즈 악단의 연주도 세련된 맛을 더했다.


영화가 끝나고 이어지는 1층 레스토랑 뒤풀이에서는 뷔페 음식과 함께 맥주 등을 마시는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도 한쪽 테이블을 차지하고 음식을 먹었다. 아내와 나는 금주 중이라 승연만 맥주를 마셨고 우리는 꼬치안주, 피자에 곁들여 물을 마셨다. 승연이 대학로에서 잘 나가는 성북동 주민 최창근 작가를 소개해줘서 같이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영화계의 많은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크게 웃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무료라는 점이었다. 중구청과 충무아트홀이 시민들을 위해 큰 일을 하는구나 싶었다. 밖에는 비도 내리고 해서 행사장에 더 있고 싶었지만 아내가 집에 와서 '우메보시' 담그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해서 먼저 일어났다.

<충무로 뮤지컬 영화제>는 뮤지컬 영화제로는 세계 최초라고 한다. 승연은 1회 때부터 계속 참석을 했었는데 [레 미제라블] 같은 영화를 상영할 때는 다들 눈물을 흘릴 정도로 좋아했는데 더 이상 행사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려 섭섭하다고 했다. 어제는 영화 보고 밥 먹고 하느라 몰랐는데 아침에 일어나 행사 리플릿을 보니 오늘 아침 11시에 [우드스탁: 사랑과 평화의 3일]을 상영하는 것이었다. 1969년도에 있었던 전설적인 우드스탁 공연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216분짜리 다큐멘터리로 편집해 놓은 작품을 놓친 것이었다. 아깝고 분했다. 나중에 꼭 극장에서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일부터 제주로 여행을 떠나서 못 보지만 토요일까지 진행되는 행사엔 아직도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남아있으니 얼른 예매를 하시기 바란다. 충무아트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전좌석 무료로 지금 예매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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