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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26. 2024

영화 '듄' 시리즈가 가르쳐 주는 끌리는 이야기의 비밀

《듄 2》에서 이야기 창작의 기본 조건을 배웁니다  

아침에 '월조회'로 CGV왕십리에 가서 《듄 2》를 보았습니다(말씀드렸죠, 월조회는 월요일 아침에 조조영화 보는 모임이라고). 듄은 거칠게 요약하면 8천 년쯤 후 스파이스라는 각성물질을 차지하기 위해 모래사막으로 이루어진 척박한 땅 아라키스 행성에서 부족끼리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베네 게세리트라는 여성 종교집단에 의해 메시아로 낙점받은 폴 아스트레이데스가 사막에 사는 프레멘 부족과 협력해 하코넨 가문과 대결하고 나아가 황제에게도 복수전을 펼치는 이야기입니다. '듄 2'는 전편과 원작 소설의 명성에 걸맞게 입이 딱 벌어지는 화면 설계, 극단적인 롱숏, 호화로운 캐스팅, 압도적인 음악 등 드니 빌뇌브의 야심이 철철 넘치는 작품입니다(드니 빌뇌브 감독은 십여 년 전의 J.J. 에이브럼스를 다시 보는 듯합니다).

그런데 막상 내용이나 캐릭터들을 보면 기사들이 활동하던 중세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천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칼싸움을 하는 건 그렇다 치고 그때도 황당하게 황제나 영웅 타령을 하고 앉아 있어요. 원작자인 프랭크 허버트가 '인류가 생각하는 기계(Thinking Machine)에 크게 당한 뒤 컴퓨터나 로봇, 인공지능을 엄격하게 금지한 사회'라는 설정을 정했다는 데서 칼싸움의 비밀은 금방 풀립니다. 그런데 여전히 집안끼리 원수가 되어 싸우고 막장 드라마처럼 출생의 비밀, 정략결혼 등이 등장하는 건 도대체 왜, 왜일까요?


그건 '인간을 움직이는 건 이성이 아닌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본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인간은 왜 이렇게 생겨 먹었나, 가 아니라 인간은 왜 이런 얘기를 좋아하느냐, 에 관해서입니다. '듄 시리즈'는 엉뚱하게도 인간이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가르쳐 주는 영화입니다. 인간은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감정의 동물입니다. 예를 들어, 투표를 해도 감정적으로 합니다. 당신은 차분하게 공약을 비교하고 찍으신다고요? 음, 제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나는 빨간당이 싫어, 나는 파란당이 싫어, 난 다 싫어... 이러면서 투표장에 갑니다. 전쟁터에서도 전투가 격렬해지는 건 전쟁에 대한 의의를 냉철하게 되새길 때가 아니라 옆에서 사격하던 동료가 총에 맞아 죽어갈 때입니다. 피를 보면 사람은 흥분하거든요.

영화에 나오는 '스파이스'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원작가가 당시 유행하던 마약 LSD에서 떠올렸다는 스파이스는 우주여행을 가능하게 하고 미래를 보게 해주는 능력도 키워주는 아주 값비싼 재화입니다. 그만큼 소중한 물질이니 전 인류가 이성적으로 판단해 주식회사 개념으로 나누어 먹고살면 평화롭겠죠? 하지만 인간의 욕망에 '주식회사'가 발 붙일 틈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드라마가 아주 재미 없어집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 미워하거나 기뻐할 이유가 갖추어질 때 움직입니다. 격렬할수록 아드레날린이 더 많이 분비되고요. 그러니까 서로 죽이고 배신하고 치를 떨 상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너무 멀리 있으면 싸우기 힘드니까 바로 옆에 있는 가족이나 일가친척, 적어도 이웃 부족이어야 하는 겁니다. 멀리 성경부터 로미오와 줄리엣, 가까이는 임성한 작가의 '인어 아가씨'에 이르기까지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늘 배신 당해 몸을 떨고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하며, 옳은 길을 두고 하필 나쁜 길만 선택합니다. 인간은 남은 물론 자기 자신도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종족입니다. 비슷한 예로 외국 음악계엔 '밴드는 반드시 깨진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그 엄청난 비틀스도 8년밖에 안 갔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글스나 롤링 스톤즈는 도대체 미친 사람들입니다.


얘기가 옆으로 샜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무튼 《듄 2》를 보면서 '굉장히 미래 이야기인데도 전근대적인 가문끼리의 대립 구도라든지 메시아의 출연을 바라는 게 참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걸 영화 제작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오래도록 쌓인 어떤 비즈니스적 원한이나 그런 맥락들을 만들어 낼 때는 회사로 해서는 그렇게 그렇게 오랜 이해관계가 지속되기 힘들 것 같다, 그러니까 결국은 집안이라든가 원수 이런 관계들을 만들어 놔야 된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성적인 존재인 거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감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티모시 살라메는 폴 역에 지나치게 잘 어울리고 레베카 페르구손은 미션 임파서블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이 넘치고 젠데이아 역시 매력 덩어리이고 플로렌스 퓨의 목소리에선 스타의 풍모가 느껴지고 하비에르 바르뎀, 조시 브롤린, 크리스토퍼 월큰 형님 같은 배우들이 떼로 나와 멋을 부리는 영화 《듄 2》는 오늘도 수많은 '듄친자(듄에 미친 자)'를 양산하며 순항 중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영화 아직도 안 보셨다면 부디 아이맥스로 보시기 바랍니다. 거대한 우주와 광활한 사막의 위용은 물론 그 안에서 펼쳐지는 모래알 만한 디테일들까지 당신이 만날 수 있는 '영화적 경험'으로는 당분간 이걸 넘어설 게 없어 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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