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의 《게릴라 씨어터》
연극의 본질은 무엇일까. 흉내내기? 이야기를 통한 세상 탐구?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인생의 축소판? 오세혁 작가는 정글 속 어설픈 게릴라들을 통해 연극의 본질을 익살스럽게 묻는다. 정확한 시대와 장소를 알 수 없는 남미 정글 속에 한 무리의 게릴라들이 등장한다.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기 위해 모인 이들은 총도 없는 오합지졸들이지만 사기와 자부심만은 충만하다. 그런데 이들에게 온정을 보이던 산지기 모녀의 태도가 어느 날 돌변한다. 이유는 정부군이 뿌린 삐라에 산지기가 설득당했기 때문이다.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는 빈농 출신 게릴라 부대원들은 삐라에 대항하는 연극을 만들어 산지기 모녀에게 자신들의 신념과 독재의 실상을 보여주기로 한다. 난생처음 연극을 만들어 보는 게릴라들의 연극 제작과 연습 장면은 웃음을 자아내다가 결국엔 찡해진다.
이 극본은 십 년 전인 2014년 서울연극제의 '희곡아 솟아라'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인데 황정민 배우가 다시 발굴해서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낭독극으로 올리게 된 것이다. 연출을 맡은 황정민 덕분에 장영남, 이종혁 같은 스타 배우들이 출연하는 낭독공연을 보게 된 것이다. 전체 해설과 지문을 읽는 역할로 등장한 황정민이나 투덜이 역의 이종혁의 연기도 좋았지만 나는 특히 산지기 역을 맡은 장영남의 과장된 억양과 딕션이 좋았다. 유명 배우가 된다는 건 저 정도의 역량과 자신감이 있어야만 가능한 거로구나, 하면서 감탄했다.
낭독극이라지만 어느 정도 의상과 분장까지 갖추고 있어서 허술하지 않았고 황정민이 "두 사람, 싸운다."라고 지문을 읽으면 앉은자리에서 팔을 뻗어 서로의 어깨와 팔을 잡으며 "에잇!"허고 외치는 이종혁과 음문석 배우들의 액션도 귀여웠다. 목숨이 오가는 심각한 상황이지만 등장인물들의 말투나 현실인식은 오세혁 작가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 덕분에 마치 스머프가 나오는 애니메이셔을 보는 기분도 들었지만 알고 보면 조금 슬픈 스머프이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 밖에서 만난 오세혁 작가는 "황정민 배우가 작품을 발굴해 주신 덕분"이라고 겸손해했지만 아내와 나는 이렇게 좋은 극본을 써 준 오 작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과연 유명배우들이라 공연이 끝난 후에도 분장실 문 앞에는 팬들로 장사진을 쳤다. /024년 11월 1일 금요일부터 일요일인 11월 3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사흘간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