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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22. 2019

변혁의 의지를 신나는 퓨전극에 담은 창작 뮤지컬

창작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 : 외쳐, 조선!]

아내가 '랩과 힙합으로 시조를 하는 뮤지컬 작품을 예약했다'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나는 그저 퓨전국악공연 중 하나를 보자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잊어버렸었다. 그러다가 어제  종로 5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 가서 보게 된 이름도 길고 이상한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 : 외쳐, 조선!]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하 마디로 하면 한복을 입고 하는 힙합 공연이었으며, 뮤지컬을 통해 메시지를 던지는 사회극이기도 했고, 그야말로 '스웨그 넘치는' 젊고 현란한 춤과 노래의 향연이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민심을 살피려면 백성의 소리를 직접 들어야 한다. 구중궁궐에 둘러싸여 있는 권력자에겐 듣고 싶은 소리만 들려주려는 '간신'들이 늘 존재하는 법이니까. 지금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가 너무나 발달한 나머지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로 장권 해임까지 하는 세상이니 시민들의 생각이 실시간으로 전달되지만 예전엔 그렇지가 않았다. 그래서 임금은 암행어사를 내려보내거나 직접 잠행을 했고 필요하면 노래를 지어 남의 혼삿길을 미리 차단하기도 했다. '서동요' 같은 노래가 대표적인 '음향삐라 살포사건'이다. 그리고 민중시가 있었다. 춘향전을 보면 '이 술과 산해진미는 만백성의 피요 살이라...' 하는 살벌한 시도 있지만 넓게 보면 조선의 민중시는 바로 '시조'가 아니었을까. 이 뮤지컬은 이런 산뜻한 상상에서 출발했다.

가상의 조선시대에 정국 안정을 핑계로 시조를 금지하던 어두운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골빈당'이라는 레지스탕스들이 나타나서 백성들에게 빨간색으로 나라 국 자가 거꾸로 쓰인 부채를 보이며 유언비어를 남발한다. '빨간색으로 쓰인 나라 국 자'는 조선의 이인자이자 실세인 시조대판서 홍국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임금까지 소문을 듣고 동요하자 홍국은 거꾸로 시조 활동을 금지한 지 15년 만에 '조선시조자랑'대회를 열기로 한다. 여기 참가해 반사회적 랩을 쏟아내는 골빈당을 체포해 처단하려는 속셈이다.

썬글라스를 쓰고 등장한 사회자가 "조선시조자랑~!"이라고 외치자 송해 선생이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 시그널 뮤직이 울려 퍼진다. 이밖에도 '조선수액' '수애구' 등 한자를 변용한 유머 넘치는 대사들이 난무한다. 저잣거리를 떠돌던 후레자식이었으나 결국 골빈당의 에이스로 거듭나게 되는 '단' 역의 배우 양희준은 젊고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노래와 춤도 모두 뛰어나서 이 작품이 데뷔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응 정도다. 홍국의 딸이자 골빈당의 숨은 후원자인 '진'역의 김수하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미스 사이공]을 공연했던 재원인데 이 작품이 우리나라 데뷔작이라고 한다. 해외 오디션 무대를 통해 글로벌하게 데뷔하고 국내로 역수입된 케이스다. 타고난 품격이 있어서 그런지 목소리가 크지도 않은데도 관객을 집중시키는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이 두 주연배우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의 '스웨그 넘치는' 춤과 노래들도 합이 척척 맞아 보는 내내 흐뭇한 쾌감을 선사한다. 그중에서도 한 가지 꼭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음향이다. 뮤지컬을 볼 때마다 배우들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리거나 너무 크게 들려서 화가 난 적이 많았는데 이 작품은 정말 대사 하나하나가 다 또렷하게 전달되었고 관객의 가슴까지 전달되는 꽉 찬 음향도 좋았다.

세 시간에 육박하는 창작 뮤지컬을 보면서 모두가 하고 싶은 말로 시를 쓰고 시조로 읊는 꿈의 나라를 잠깐 상상했다. 아울러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세계시인대회 개막식에서 이어령 전 장관이 했던 개회사 내용도 떠올렸다. 정확한 연설문은 기억할 수 없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여러분, 시인의 나라 대한민국에 잘 오셨습니다.  대한민국 하면 어떤 게 떠오르십니까? 조용한 아침의 나라, 6.25사변, 한강의 기적... 그러나 대한민국은 조선시대에 '과거'라는 시험제도를 통해 시를 짓는 것으로 관리를 뽑던 시인의 나라이기도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지하 2층 배우 대기실 앞에서 주연배우들과 기념촬영을 한 뒤 일 층으로 나올라왔을 때 현관 밖엔 또 다른 팬들이 구름처럼 모여 배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다리가 휘청했다. 뮤지컬 배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골빈당이라는 스웨그 넘치는 '시조 창작단'을 기다리고 있는 조선의 젊은이들처럼 느껴졌다. 기분 좋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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