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Aug 24. 2019

잘 만들어진 두 번째 영화의 예시

윤가은의 [우리집]


[우리들]로 데뷔한 윤가은 감독은 선배 감독들을 만나는 자리마다 두 번째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냐고 묻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의 대답이 놀랍게도 모두 똑같았다고 한다.


"고민하지 말고 그냥 만들어. 최대한 빨리."

어쩌면 진리는 단순한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그것이 좋은 작가의 덕목 아닐까. [미국의 목가]를 쓴 필립 로스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라고. 윤가은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것이다. 어린이들을 어린이로 보지 않고 하나의 완성된 '세계'로 보는 것이 그의 장점이다. 그러니 거기에 어렸을 때 경험을 되살려 사실성을 높이고 공감 가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또다시 어린이들과의 작업을 결심했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어린 배우들을 찾아 나섰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대성공. 너무나 사랑스러우면서도 슬프고 공감이 가는 영화가 또 한 편 태어났다. '우리들'에 이어 '우리집'이라는 제목을 달고.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씩은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집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런데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렸을 때 했던 고민들도 대부분 잊게 된다. 문제는 고민을 잊게 되는 게 아니라 고민했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게 됨으로써 아이들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다행히 윤가은 감독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이사를 자주 다니거나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 밑에서 사는 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 상황인지를 잘 보여준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어린애들이 뭐, 하며 그냥 스쳐 지나갈 일화들에서 보석 같은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감독의 연출력이 놀랍고 자기가 맡은 역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영화 속에서 '노는' 어린이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좋다. 감독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지만 모든 좋은 작품이 그렇듯이 이건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선 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에 관한 영화 같다.

"언니, 그래도 우리 언니 해줄 거지?" "그럼. 당연하지."라는 , 대목에서 아내가 눈물을 흘렸다. 나도 "우리, 밥 든든히 먹고 진짜 여행 준비하자"라고 말하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라스트신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극장을 나서며 도배 일을 하는 유진 유미 부모가 영화에서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가 당장 수백만 관객을 만나는 흥행작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 단박에 친해질 순 있을 것 같다. 같은 명품이라도 겉으로 요란하게 상표를 드러내는 것보다는 아는 사람들끼리만 은근히 알아보고 언급해줄 때 더 큰 자부심 느끼게 되는 것처럼.   

작가의 이전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닮은 어린이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