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회식을 한 날의 이야기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 두 사람(하나는 계엄령을 내렸던 윤석열) 중 하나로 내가 지목했던 앞집 할머니를 만났다. 통장님에게 문자 메시지로 전화번호를 물었더니 대전에서 뭔가 교육을 받는 중이라고 하면서도 친절하게 연락처를 가르쳐 주셨고 다음날 현장에 가서 전화를 걸었더니 마침 집에 계셨던 것이다. 아내와 나는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 일단 정원의 블루베리 나무들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했다. 아울러 공사를 하느라고 먼지와 소음이 많은데 참아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도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먼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라면서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다. 먼지 나는 공사를 할 때 왜 물을 뿌리지 않았냐는 질책이다. 그건 우리 공사팀이 잘못한 것 같았다. 비닐을 치고 물을 뿌리는 게 맞았다. 바로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할머니는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았지만 애써 자제했음을 역설하며 "내가 얘기하면 최소 30분이야. 그래서 참았어. 공사는 시간이 돈인데 내가 시간을 빼앗으면 안 되는 거잖아....... 근데, 집 5,500에 산 거 맞아? 공사비는 일억 든다는 소리가 있던데 맞아? 내가 보기엔 1억도 넘게 들 거 같던데."
맙소사, 할머니가 우리 집 공사에 드는 금액까지 꿰고 계실 줄은 몰랐다. 할머니가 85세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겉모습은 70대 초반 정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매일 탁구를 치러 다니시고 전국 대회까지 나간 적이 있다고 하더니 정말 대단한 체력과 자기 관리의 소유자였다. 우리는 도시가스를 들이려면 할머니 집을 거쳐가야 하는데 허락을 좀 해주십사 부탁을 드렸더니 바로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 말씀은 큰길에서 우리 집까지 가는 좁은 골목 밑엔 이미 많은 관들이 묻혀 있어서 더 이상 뭘 매설할 수 없고 또 공사를 하려면 자신의 담과 정원을 까내야 하는데 그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우리도 무조건 해 달라고 떼를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직 결론을 내릴 때는 아니지만 조금 과격하고 극단적인 데가 있는 이 할머니가 아주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소통이 중요하다. 직접 만나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보니 내가 씌운 빌런 이미지는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내는 "제가 도시가스 회사에도 다시 알아보고 말씀드릴게요. 정말 불가능하다면 뭐 LPG를 쓰는 수밖에 없죠."라며 물러섰다.
할머니 집에서 나오니 마침 자기 집 담장 공사를 하고 계시던 '개발위원장님'에게 인사를 하는데 다른 남성 두 분이 갑자기 나타나셔서 우리 집 걱정을 또 하셨다. 공사는 보령 사람이 하냐(아니요, 서울에서 공사 팀이 내려왔어요), 공사비는 일억이 넘게 드냐(네, 많이 듭니다. 얼마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한꺼번에 맡겨야지 날품으로 하면 공사비 낭비가 심할 건데(네, 그렇게 하고 있어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등등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아저씨들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 집 공사가 요즘 이 동네 초미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하긴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젊은(?) 작가 부부가 집을 샀다고 하더니 공사를 아주 대대적으로 하고 있으니 '저것들이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아저씨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을 하면서 속으로 '서울과 보령은 분위기가 참 많이 다르구나. 앞으로 균형을 잘 잡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동네 사람들이 뜨거운 관심을 쏟든 말든 공사는 착착 진행되어 거실과 침실엔 LED 등이 환하게 들어왔고 실내에서는 합판 작업이 한창이었다. 철제 사다리를 타고 이층에 올라가 보니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시원라고 좋았다. 건희 씨가 아침 일찍 찍은 거라며 산 아래를 두른 운무를 보여주었다. 앞으로 새벽에 일어나면 저런 장관을 자주 볼 수 있으리라. 장 반장님은 하루 종일 마당의 시멘트를 까내고 부수고 하더니 어느새 평평한 마당을 거의 다 완성하셨고 아내가 침실 창과 거실 창 앞에 각각 나무를 한 그루씩 심고 싶다고 하자 나무 심을 위치를 잡아주기도 했다. 고마운 분이다. 목요일은 이 주일에 한 번씩 하는 고기 회식이 있는 날이다. 나는 '대천삼겹'에 예약을 해 놓았다. 장 반장님이 거기가 맛있다고 해서였고 내가 생각해도 고기도 좋고 서비스가 훌륭한 집이었다. 다섯 시 반부터 고깃집에 모여 고기를 구웠고 술을 마셨다. 술 대신 콜라를 마시던 임 목수님이 "아, 까먹고 고기 사진을 안 찍었네." 하면서 스마트폰 카메라를 불판 앞에 들이댔다. 장 반장님, 임 목수님, 건희 씨 등이 앞다투어 사진을 찍어 어디론가 전송을 했다. 집 떠나와 일을 하는 남편을 염려하는 아내들에게 '나 잘 먹고 잘 지내니 걱정 마라'라는 증거를 보이고 싶어 그러는 것일 게다.
장 반장님 사모님이 호주에서 음식점을 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아내가 장 반장님도 호주에 가시지 왜 여기 게시냐고, 호주에서는 도배나 장판, 미장공들 벌이가 쏠쏠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라고 하자 장 반장님은 순댓국을 너무 좋아해서 자기는 외국에서 살 수가 없다며 웃었다. 실제로 호주에 갔다가 돌아오는 공항에서 바로 택시를 타고 순댓국집으로 간 적도 있다고 했다. 즐거운 회식자리였다. 술 대신 물을 마시던 나도 고기를 놔두고 나는 식당에서 나왔다. 저녁 7시에 보령시립도서관에서 '깊게 읽기 : 필사 모임' 강연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은 서울에서 여행작가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 강연도 해야 한다. 집수리는 내가 하는 게 아니기에(일은 돈이 한다. 아니, 우리의 돈을 받은 임 목수님과 그 팀원들이 한다) 나는 글쓰기와 강연이 생업이니 그걸 소홀히 할 수 없다. 세 번째 헌 집수리라는 큰 일을 벌였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아무튼 요즘은 모든 게 바쁘고 즐겁고 심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위로하고 또 힘을 내보는 좌충우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