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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의 샌드위치

나희덕 시집 『시와 물질』

by 편성준

나희덕 시인의 시집 『시와 물질』 중 「샌드위치」를 읽는다. 시인은 2022년 어느 토요일 서울역에 있는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산 샌드위치를 기차 안에서 먹는다. 그리고 알게 된다. 이 샌드위치 만들던 노동자가 어느 날 샌드위치 소스 교반기 속으로 상반신이 빨려들어가 숨졌다는 사실을.

그는 의심한다. 혹시 내가 먹은 이 샌드위치도 그중 하나였을까? 사망현장에서 생산된 샌드위치 사만 여개가 모두 유통되었다고 하던데. 공장측은 바로 다음날 사고가 난 교반기를 흰 천으로 덮어두고 작업 재개를 지시했다고 하던데.


시로 다루기엔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기사로 한 번 다루고 넘어가기엔 한 인간의 삶이 너무 사소해진다. 나는 문학이 하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프고 괴롭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눈을 갖게 하는 것, 따뜻하고 아름다운 말과 글만 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이런 끔찍한 얘기를 시집 안에 기꺼이 담는 일.

시인은 하나의 창문이 깨지면 다른 창문들도 깨지고 말 것이라는 걸 증명하듯 빈집이 하루하루 늘어가는 재개발구역을 지나며, 저당잡힌 감정과 생각과 시간 들로 가득한 은행에 가서 여전히 은행빚을 갚으며, 한 편의 시가 폭발물도 독극물도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수많은 시가 태어나도 달라지지 않는 이 세상에서, 시를 쓴다.


플라톤은 애저녁에 틀렸다. 시인은 추방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사회가 마지막까지 보호해야 할 존재다. 시인은 갱도 속의 카나리아 같은 존재니까. 나온 지 얼마 안 된 시집이니까 지금 당장 서점에 가서 나희덕 카나리아를 만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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