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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에 썼던 글

우리의 찻 만남 : 만남과 이별을 거듭했던 나의 애마들

by 편성준

이사 와서 아직 책 정리를 못 하고 망연자실 바라보고만 있는데 책더미 속에서 '샘터'를 발견했습니다. 올 3월에 발행된 55호인데 '우리의 첫 만남'이라는 특집에 에세이를 하나 써 보냈습니다. 책을 펼쳐보니 영광스럽게도 제 글이 제일 앞에 자리 잡고 있더군요. 반가운 마음과 제가 뭐라고 썼나 다시 한번 확인하는 마음으로 전문을 올려봅니다. 제목은 '만남과 이별을 거듭했던 나의 애마들'입니다. 제가 처음 사서 타고 다녔던 아반떼부터 지금 타고 있는 미니 쿠퍼까지 자동차들에 대해 썼습니다. 자동차도 잘 모르고 운전도 잘하지 못합니다만. 아, 책 뒤페이지 쪽엔 안희연 시인이 연재하는 '스크린에 띄우는 편지'와 유희경 시인이 쓰는 '유희경의 흑백풍경'도 있습니다. 지난 잡지 다시 읽는 재미가 각별합니다.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했던 내 애인 같은 자동차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 (Modern Times)’에는 하루 종일 공장에서 나사를 돌리던 남자가 밖에 나와서도 스패너를 들고 같은 동작을 되풀이해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작품은 산업화와 기계화로 인한 인간 소외를 풍자하는 작품이며 채플린의 대표적인 사회 비판 코미디다. 거기 나오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만들어 낸 사람이 자동차왕 헨리 포드다. ‘포디즘’의 시초가 자동차 산업이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포드는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교통수단에 대한 수요 조사를 했다면 ‘보다 빠른 말’을 원했을 것이고 그대로 따라 했다면 자동차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잘난 체를 했다. 자동차는 근대를 여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기계라는 말이다.


이상하게도 자동차는 남자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세상의 모든 좋은 물건과 가치는 오랫동안 남성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중고등학교 때 남학생들은 기술이나 공업 시간에 자동차 엔진 구조에 대해 배웠지만 여학생들에겐 가사를 가르쳤다. 감수성이 민감한 시기에 기성세대들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부터 심어주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자동차 엔진 구조를 배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사를 배우고 싶었던 건 아니고 그냥 자동차나 기계에 관심이 없는 남학생이었다.

그러다 나도 자동차를 사야겠다 마음먹은 건 MBC애드컴이라는 광고대행사를 다닐 때였다. 회사 일이 바빠 사생활이 너무 없다고 화를 내다가 자동차를 사면 나만의 시공간이 생길 것이란 생각에 당시 신차였던 아반떼를 뽑았다.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차를 사라는 말이 있다(한 달을 해복하려면 결혼을 하란다. 결국 결혼의 행복은 한 달밖에 유지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만들어 낸 유머 같다). 새 차가 주는 행복이 그토록 짧다는 뜻인데 그건 나에게도 그랬다. 매일 야근에 주말 특근까지 하다 보니 드라이브할 기회도 없이 새 차는 졸지에 출퇴근용 차량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더구나 나는 길눈도 어두워서 운전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고 술을 좋아하다 보니 운전하는 날보다는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는 날이 더 많았다. 일 년쯤 지나고 나니 차라리 차를 팔아버리고 마음 편히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는 생각에 첫 자동차에게 이별을 고했다. 차를 살 때의 가격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헐값에 넘겼지만 미련은 없었다.


광고대행사를 그만두고 잠깐 쉬다가 친구와 크리에이티브 브티크를 차려 독립했다. 그런데 동업자인 친구는 별명이 ‘차돌이’일 정도로 차를 좋아하는 놈이었다. 그는 새 차만 보면 환장을 했고 가지고 있던 차를 처리하는 데도 능숙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자신의 랜드로버 프리랜더를 인수하라고 속삭였다. 자신은 새로 태어난 아기 때문에 승용차가 필요하다며 볼보 신형차 카탈로그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귀가 얇은 나는 그의 말에 홀딱 넘어가 팔자에 없는 외제차 보유자가 됐다. ‘영국 왕실의 차’라는 컨셉으로 유명한 이 차는 진흙탕에서도 거뜬하게 빠져나오는 사륜구동이 특장점이었으나 오프로드를 달릴 일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그저 눈에 띄는 차라는 점 말고 큰 만족감이 없었다. 그래도 이 차는 3년 정도 충실히 나의 발이 되어 주었다. 문제는 친구와의 동업을 종료하고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생활하면서 나타났다. 불경기에 개인 사정까지 겹쳐 경제적으로 매우 곤란한 시기였는데 여전히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게 맞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자동차에 설치한 내비게이션이 결정적인 순간마다 작동을 멈추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A/S센터에 가서 문의를 해보니 당시에 유독 프리랜더 기종이 전파방해를 심하게 받아 내비게이션 오작동이 많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이 떨어진 나는 두 번째 차와도 이별을 고해야 했다. 이번에는 마치 오래된 애인과 헤어지는 것처럼 서운했다. 운전을 좋아하지 않느니 어쩌니 해도 그새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뚜벅이’로 지냈다. 뒤늦게 만나 결혼한 아내도 운전면허는 있지만 운전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 죽이 맞았다. 그래도 가끔은 차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주고받긴 했으나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데 차를 구입할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아파트를 떠나 성북동의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뒤에는 골목마다 심각한 주차난 때문에 차가 없는 게 더 마음 편했다.


그러다 작년 7월 보령으로 전격 이사를 하면서 중고 미니 로버를 한 대 샀다. 이번에도 외제 자동차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크기도 우리에게 딱 맞는 차라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지방은 대중교통이 서울처럼 원활하지 않기에 자동차가 없으면 불편한 점이 너무 많다. 보령으로 이사를 했지만 서울에도 작은 숙소를 하나 마련해 놓고 두 곳을 오가는 생활을 하는데 고양이 순자를 데랴가야 할 때 말고는 주로 기차나 고속버스를 이용한다. 두 시간 넘게 운전하는 게 피곤하기도 하고 서울에 가면 여전히 주차가 불편해서다. 이번 차와는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다. 세 번째 차는 세 번째로 만난 애인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첫 번째처럼 설레진 않지만 실용적인 면에서는 나와 잘 맞는다는 판단이다.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부유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자신의 소유물을 관리하는 관리인의 삶을 산다.”라는 말을 남겼다. 자동차에도 이런 통찰이 필요한 게 아닐까. 너무 애지중지할 필요도 없고 체면을 생각해 무리할 필요도 없다. 이제 애인보다는 나를 주인으로 섬겨주는 집사 같은 차를 원하는 건가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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