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연극 《보도지침》 리뷰
용산 대통령실에 가서 윤 전 대통령이 만들어 준 계란말이에 환호작약하며 현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못하고 돌아오던 기자들을 보며 허탈감을 느꼈다. 저 사람들에게도 '기자의 사명감'이라는 게 있을까.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은 다 어디 간 것일까. 그냥 월급 많이 받는 엘리트인 건가. 엄혹하던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견뎌 온 언론계 선배들은 저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연극 《보도지침》은 1986년 '《말》지 사건'이라 불리는, 정부 당국에서 신문사와 언론계 전반에 보도 지침을 내림으로써 강압적으로 언론 통제를 했던 실제 사건을 다룬 이야기다. 6.25나 박정희의 유신, 전두환의 독재 등 현대사를 토대로 흥미로운 픽션들을 창조하는 오세혁 작가가 2016년에 쓴 희곡을 토대로 정철이 연출했다.
같은 대학 연극반 출신인 두 명의 기자와 검사 그리고 판사까지 한 법정에 선다는 것부터가 매우 연극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판사는 재판을 시작하기 직전 "여기는 법정이면서 동시에 극장이고 또한 광장이기도 하다"라고 선언한다. 4면 무대로 구성된 무대는 결정적인 대사가 나올 때마다 법정과 연극 동아리방, 그리고 남산 취조실 등으로 전환을 거듭한다. 불이 꺼졌을 때 단지 책상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타임 슬립이 가능한 것은 연출의 생각이 그만큼 자유롭다는 것이다.
배우들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나는 이 연극을 낭독극까지 포함해서 네 번째 보는데 어제의 캐스팅이 제일 화려했다. '젠더 프리'는 이제 대세가 된 듯하다. 김주혁 역을 맡은 신윤지 배우는 풍부한 표정과 확실한 딕션으로 원래 남성이었던 기자 역을 완벽하게 해냈고 김정배 역의 이강욱 배우도 뛰어난 연기력은 물론 자신이 대사를 하지 않는 순간에도 디테일한 액션을 취해 관객들로 하여금 마음 놓고 연극 속에 빠져들 수 있게 해 주었다. 관록의 배우 곽지숙은 서늘하면서도 복잡한 판사 캐릭터에 활력을 주었고 김건호, 정단비의 폭발하는 연기력은 젊은 세대의 힘을 느끼게 해 준다. 이번 토요일 안소영 배우와 결혼식을 올리는 김세환 배우를 무대에서 만날 수 있었던 건 일종의 행운 같은 반가움이었다.
아내와 나는 "배우나 연출도 뛰어나지만 역시 시공간을 넘나드는 자유로움과 역사적 사실들에 의미를 불어넣을 줄 아는 각본이야말로 이 연극을 명작 반열에 오르게 한다"라고 합의를 보았다. 아내는 오세혁이 천재라는 말까지 했다. 연극이 끝나고 관객들이 쓴 독백 멘트를 배우들이 낭독해 주는 이벤트가 있다고 했는데 스케줄이 안 맞아서 그냥 나왔다. 객석 구석에 앉아 있던 오세혁 작가도 힐끗 보았는데 인사는 못 나누고 말았다. 나중에 오 작가가 전화를 했길래, 연극 잘 봤어요(물론 내돈내산으로 봄), 결혼 축하합니다(11월에 결혼식 올림) 등등 인사만 하고 말았다. 2025년 8월 17일까지 서울숲씨어터에 공연한다.
오세혁 작 @fivethreehyeok
정철 연출
곽지숙 @ji.sook.kwak 이강욱 신윤지 @ddamna89 김세환 @actorsehwan881004 임진구 김건호 @hohohou7990 정단비 @sweet___rain___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