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더군요

출연자가 직접 쓰는 '더 티 토크쇼' 후기

by 편성준


시작은 정용실 아나운서였다. 김윤진 대표가 운영하는 압구정동 펠든크라이스 무브 스튜디오에서 만난 정용실 아나운서가 "김성신 선생의 새 책 북토크에 갔었는데, 내가 사회를 봤으면 훨씬 재밌게 진행을 했을 텐데, 아니 왜 날 안 부르는 거야?"라고 하자 윤혜자가 "그럼 제가 토크쇼 하나 기획하면 와서 사회 봐주실래요?"라고 받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읽고 쓰고 기획하는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더 티 토크쇼'가 만들어졌다. 더티 토크는 원래 '야한 말을 지껄인다'는 뜻이지만 내가 주목을 끌려면 제목이 재밌어야 한다며 밀어붙인 아이디어다. 이렇게 해서 김성신, 방명세, 편성준 등 자기 분야에서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2025년 7월 24일 목요일 저녁 일곱 시, 남대문의 정림건축 9층 김정철 홀에 60여 명의 유료관객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강연장 입구에 있는 방명세 정림CM 대표의 '필드 스케치'를 보며 놀라워했고 『서평가 되는 법』 『읽는 기쁨』 『공감의 언어』 등 출연자와 사회자 들의 책을 구경하거나 구입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행사장 책 판매는 성북동 고양이 책방 《책보냥》의 김대영 대표가 와서 수고해 주었다.


강연 시작 전 15분 간 김윤진 대표가 '읽고 쓰는 사람들을 위한 가벼운 몸 풀기'라는 주제로 펠든 크라이스 무브 동작을 알려 주었다. 아주 작은 움직임과 몸에 대한 인식만으로도 자세가 달라지는 신기한 시간이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자신이 서평가들을 길러낼 수 있었던 건 '서평엔 벽이 없다'는 신조 때문이라고 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서평을 쓸 '엄두'를 내면 되고 그게 바로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방송 출연 경험이 많은 김성신 평론가는 스마트폰을 살짝살짝 보며 이야기하는데도 막힘이 전혀 없고 필요한 구간마다 유머를 구사하며 토크를 마쳤다. 패널들에게 주어진 15분을 엄격하게 지키기로 했기에 발표 내용은 함축적이면서도 인상적이어야 했다.


방명세 대표는 외국 출장을 갈 때마다 수첩에 펜으로 스케치와 메모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장점을 살리기보다 '단점을 보완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라 고백했다. 주의가 산만한 학생이었던 그는 건축학과를 나와 회사원이 된 뒤 출장길마다 수첩에 그린 그림으로 기록과 메모를 대신했다. 카메라가 흔한 시대에도 손과 펜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는 건 '어렵고 귀찮은 과정을 거치는 행위일수록 오래 기억에 남고 발전성이 있다'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시멘트 먼지 날리는 해외 공사 현장에서 그린 그림들에 그 나라 노동자들과 코이카(KOICA) 관계자들은 감동했고 방명세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내재화'로도 이어졌다. 사원으로 입사해 사장직까지 오르게 된 건 다 이런 꾸준함 덕분인 것 같다며 웃는 방 대표의 얼굴엔 소년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편성준은 학생이나 직장인 시절엔 꿈도 없이 모든 게 귀찮기만 한 인간이었는데 출판기획자 윤혜자를 만나 결혼 후 인생이 달려졌다고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직장을 그만둔 뒤 글을 쓰고 책을 낸 게 새로운 인생을 만들었다. 그는 "글을 쓰라는 건 문필가가 되라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사업계획서를 쓰든 유튜브 대본을 쓰든, 심지어 정치가조차도 글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 읽고 독후감을 써야지 생각할 게 아니라 중간에 '독중감'을 써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쓴 책이 『읽는 기쁨』이었고 그렇게 모인 메모와 생각들로 쓴 게 『나를 살린 문장, 내가 살린 문장』이었다. 그는 카피라이터 시절과 작가로 사는 지금을 비교해 보면 돈은 적게 벌어도 지금이 단연 더 '행복에 가까운 쪽'이라면서 웃었다.


1부가 끝나고 2부 직전엔 배우 심은우가 나와 편성준의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에 수록된 '우는 배우'라는 글과 자신이 출연했던 연극 《노란 달》 중 레일라의 독백 등을 열정적이고도 멋지게 낭독해 주었다. 심은우 배우가 '입체낭독'을 할 때는 객석에서 울먹이는 사람도 있었다. 똑같은 글이라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감동의 깊이가 달라진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런 행사는 주최 측의 준비나 출연자들의 진심 못지않게 관객들의 반응도 중요한데 이 날 관객들은 저마다 반짝이는 눈동자로 집중해서 듣고 공감해 주는 분들이라 너무 기뻤다. 정용실 아나운서가 중간에 5분 정도 휴식 시간을 제안했는데 그것 역시 신의 한 수였다. 한껏 고양되었던 강연 분위기가 느슨해지자 비로소 관객들은 옆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2부에서 마이크를 잡은 정용실 아나운서가 글쓰기의 시작은 일기부터 시작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문을 열자 편성준이 받아 자신이 쓴 '음주일기'를 예로 들며 너스레를 떨었다. 책이 너무 많이 발행되는 시대이다 보니 읽을 만한 책을 알려주는 '큐레이터'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화두 뒤에는 '한 달에 300권 정도의 책이 집으로 도착한다'라는 김성신 평론가의 발언에 눈과 귀가 모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성신은 책을 읽다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덮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차피 일 년에 7만 종 넘게 쏟아지는 책을 다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기에 자신의 선택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쓰는 방법론에 대한 질문에 편성준은 '글감이나 컨셉은 언제나 모호한 상태에서 시작되므로 그걸 날려버리지 않고 잘 살리는 게 관건'이라며 혼자 하는 것보다는 책 쓰기에 도움이 되는 워크숍이나 동호회 등 믿을 만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게 방법이라고 했다. 일과 삶의 경계에 대한 질문에 방명세 대표는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결단을 삶에 새겨야 한다는 조언을 들려주었다.


유쾌하고 즐거운 토크쇼였다. 작가와 평론가, 기록자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고 겸손했으며 사회자 역시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패널과 관객을 이어주는 진행 솜씨를 120퍼센트 발휘했지만 그 제스처는 결코 넘치지 않았다. 쇼가 끝나고 전 TBS 정연주 아나운서가 KBS 아나운서 선배이자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1호'로 알려진 이정숙 선생을 소개해 주었다. 목요일 저녁에 다른 스케줄을 접고 남대문에 있는 강연장까지(더구나 돈을 미리 내고) 찾아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오랜만에 보는 '소행성 책쓰기' 멤버들이 반가웠다. 지난번 '디딤돌 인문학' 강사 모임에 잠깐 왔다가 편성준을 만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참석한 임지영 선생이 고마웠다. 출판계에서 활약하는 뚜라미 후배 서명지와 그 동료들, 그리고 30년 만에 동아리 선배 편성준을 만난다는 양은정, 김병직 후배도 너무 반가웠다. 그 밖에도 너무 많은 지인들이 바쁘고 심란한 일상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해주었다.


윤혜자는 이런 유료 행사를 기획하는 게 무모하지 않나 걱정을 했는데 관객들이 너무 좋아하는 게 느껴졌고 적은 돈이지만 출연자와 기획자 모두에게 출연료를 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행사 준비로 정신이 없어 밥이나 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방명세 대표가 샌드위치도 배달시키고 또 뒤풀이 자리로 남대문이 내려다 보이는 16층 바에 데려가 와인도 사주었다. 와인을 마시면서 행사장 시스템과 자리를 정리해 주던 정림건축 직원들을 생각했다. 이런 대표가 있기에 직원들 표정이 그토록 밝았던 것이구나, 더 티 토크쇼 아무래도 또 해야겠는데, 이번에 진짜 더티하게 해 볼까? 아냐, 진지하고 재밌고 겸손하게 가자. 관객들이 그래서 좋아한 거잖아. 진심은 통하게 돼있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냥 북토크가 아닙니다, 더티한 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