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듬 시집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에서 발견한 시
정치인에 대한 견해가 너무 달라서 오랜 친구와 절연을 했다는 얘기를 SNS에서 심심치 않게 읽는다. 나 역시 이슈가 되는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가 달라서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대선 때 김문수의 선거운동 영상을 보고 "이런 분이 우리 지도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쓴 변호사의 경우는 정말 놀라웠다). 정치적 성향이라는 게 김문수처럼 극좌에서 극우로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타고난 성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나 역시 민주당 지지자에서 조국혁신당 당원이 되었지만 정치적 신념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한다(아버지는 1970년대부터 공화당원이셨는데 돌아가실 때도 비슷했다).
정치적 성향이라는 건 한 사람의 삶을 지배하고 나아가 주변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하는 말(또는 쓰는 글)이나 행동은 결국 그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인격이나 인품이 드러난다. 나이가 들고 지위가 올라갔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걸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나도 가끔은 나의 정치적 소신을 글로 써서 타인을 설득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아니, 이렇게 불을 보듯 뻔한 이치를 왜 당신은 모른단 말이냐, 어떻게 그런 사람에게 표를 줄 수 있단 말이냐!'
하지만 사람을 이성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착각이요 교만이라는 걸 알게 된 다음부터는 그런 시도를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일단 누군가를 설득하기엔 나의 정치적 지식이나 맥락을 읽는 능력이 너무 부족하다. 최소한의 진정성이라도 있지 않느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아무리 가슴을 쳐가며 주장하고 설득한다 해도 상대방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한 그 외침들은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다 자신이 속해 있는 우물 속에서 산다. 슈퍼맨만 그 우물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 정도의 포용력과 회복탄력성을 가진 사람은 이미 사람을 넘어섰기에 슈퍼맨 또는 오버맨이라 부르는 게 아닐까. 내가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런 인간의 한계를 김이듬 시인은 이렇게 간단하게 쓴다. 시인들은 참 놀라운 존재다.
검은 천을 덮어 두었더니
깊은 바닷속인 줄 알고
바지락조개가 뻘을 다 토했다.
별로 손질할 필요가 없어
나는 살아 있는 조개를 끓는 물에 넣었다.
갯벌 묻은 양동이만 한 내 세계에
뭐가 뒤덮여 있는 줄 모르고
김이듬 시집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중 '봉골레 파스타 먹으러 와'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