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팁 : How to write
어제 아침에 보령에 있는 우리 집 뒷산인 봉황산 산책로를 걸으며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골몰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생각은 어디서든, 어떤 순간에도 떠오를 수 있지만 글로 써야 완성도가 높아진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생각과 그것을 글로 써서 표현해 보려 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글은 의도한 대로 쓰이지 않는다. 쓰다 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소재나 기억들이 끼어들어 글을 더 좋게 만들거나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게 하는 이상한 힘이 생긴다. 그 힘은 순간적으로 작가를 천재로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글을 쓰고 나면 자기 자신에게 놀라고 고치면서 좀 더 나아지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물론 실망스러울 때가 더 많다. 그렇게 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그 반응을 살피는 것은 관종들에겐 일종의 희열이다(그렇다, 나 관종 맞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관심종자들이다). 그래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브런치에 글을 써서 올리기도 하고 해마다 책을 써서 독자들이 내 글을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깊게 읽어주길 바란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닿아 울림을 준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자부심이 된다.
효용성이나 효능감에 있어서도 글쓰기는 매우 유효하다. 효능감은 어떤 행동으로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기대다. 오늘날에는 특히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가리킨다. 이는 일반적 자신감과 다르다. 자기효능감은 특정 상황에서 해낼 수 있다는, 성공 경험으로 뒷받침된 자신감에 가깝다. 그런 견지에서 글쓰기는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그 능력과 아이디어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지금부터 영화나 연극 또는 사업으로 만든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이 들겠는가. 하지만 글은 그런 노력들에 비해 훨씬 빠르고 즉각적인 결과를 만든다. 글쓰기를 하고 나서 느끼는 즐거움이나 쾌감은 다른 분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효능감을 동반한다.
글쓰기는 창의적인 순간을 가장 손쉽게 경험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창의적인 뇌의 비밀>에서 볼 수 있듯 크리에이티브한 순간을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그 다큐에 출연한 배우 팀 로빈스는 "우리 삶에 찾아오는 공허함과 우울 같은 부정적 요소들은 어쩌면 '창의적이 불꽃'이 결여되어 있어서는 아닐까?"라고 묻는다. 창조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살고 싶다면 점잖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뭔가 재미있는 생각을 했다가도 '이건 나다운 생각도 아니고 또 이런 거 누구한테 얘기하면 놀림만 당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상상력은 꺼져 버린다. 예를 들어 나는 예쁜 코와 예쁜 턱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편인데 어느 날 지나가던 여성의 예쁜 코를 쳐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에 코가 성기라면 사람들은 다 코를 가리고 다니겠지? 그래서 팬티를 코가리개라고 부르겠지. 아니, 코가리개를 팬티라고 부르려나. 뭐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다. 코가 성기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코에 그런 뜻이 담겨 있다면 그 여성은 나의 눈길을 눈치채고 당장 달려와 내 뺨을 후려칠 것 아닌가. 경찰에게 신고해 경범죄나 성희롱으로 쳐 넣으려 할지도 모른다.
뭐 그런 싱거운 생각을 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어이없는 상상도 계속 굴리다 보면 매운 생각으로 바뀌기도 한다. 뺨을 맞는 나는 억울한 상태가 된다. 길 가던 사람에게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푸념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별 미친놈 다 보겠네 하는 표정으로 그냥 지나친다. 이런 생각들을 연이어하다 보면 상상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 어느 순간 "아니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실제로 그렇지도 않았잖아.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얼른 접어야지." 하는 순간 이야기는 사라진다. 그건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어떤 장르로 어떻게 표현할지, 거기서 어떤 재미를 발견할 것인지 등등은 글로 서서 발표하기 전까지는 전적으로 다 나의 자유다. 말이 길어졌다. 산책로에서 얻은 교훈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뭔가 한심한 생각이 피어날 때 거기서 점잖아져 버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쉽게 점잖아지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