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글쓰기 강연에서 있었던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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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빴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디딤돌 인문학'의 최준영 대표에게 인문학 강사로 발탁되어 전북 익산으로, 충남 아산으로 자활센터에 계신 분들께 글쓰기 강의를 하러 다녔습니다. 삶의 희망이 한풀 꺾인 분들에게 글쓰기 강연이 웬 말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저의 약간 한심하고 소소한 이야기에 공감하고 귀 기울여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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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좌를 진행하면서 줌으로 하는 '글쓰기 치트키 이틀 연속 특강'도 했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이틀 동안 진행했는데 아홉 분의 수강자들이 오셔서 정말 열심히 들어주셨습니다. 신청자 중엔 변호사나 아나운서를 하는 분도 계셨고 멀리 미국에서 네일샵에서 근무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남편을 대신해 사업체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이제 내려놓으려 한다는 분의 사연은 그 자제만으로 큰 감동이었습니다. '10분 글쓰기'를 통해 다들 멋진 에세이를 한 편 쓰셨고, 생성형 AI인 ChatGPT나 perplexity를 이용해 글을 써보는 시간도 가졌는데 모두 완성도 높은 글을 써서 제출해 주셨습니다. 저는 강의 제목을 '글쓰기 치트키'라고 정한 김에 정말로 글 쓰는 데 필요한 10가지 치트키를 정리해서 말씀드렸는데 다들 기대 이상으로 좋아하셨습니다. 특강이 끝나고 '너무 재밌었다' '기간이 짧아 아쉬웠고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글을 쓸 수 있는 출발점이 된 것 같다' 등등의 소감을 말씀해 주셔서 감동하고 말았습니다. 듣고 나서 별로였다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을 터지게 했는데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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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엔 보령시립도서관으로 '필사 수업' 진행을 하러 갔습니다. 지난봄에도 12회 강연을 했는데 이번에 또 12회를 맡게 되었거든요. 지역 도서관에서 하는 무료 강연이라 참가 인원도 12명밖에 되지 않는데 그나마 오늘은 다섯 분만 참석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엔 제가 낸 필사책 『내가 살린 문장, 나를 살린 문장』을 교재로 사용하게 되어 더 뜻깊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제 책에서 인용한 글 중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필사하고 그걸 선택한 이유를 말해보는 날이었습니다. 제가 집에서 가져간 필사용 빈 노트를 한 권씩 드렸더니 수강자들은 신이 났습니다. 그런데 한 분이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제가 뽑은 문장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재인용한 문장은,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우주의 냉엄한 진실이다. 우리는 작은 티끌들, 깜빡거리듯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우주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들이다. 명민하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호흡, 모든 걸음마다 우리의 사소함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고 그걸 선택한 이유를 얘기하며 왜 울었던 걸까요? 본인도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가 울음이 북받쳐서 놀랐다고 했습니다. 젊은 시절 완벽주의자로 살았던 그분은 완벽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계속 닦아세우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아이도 낳고 하면서 삶이 좀 가벼워졌는데 물루 밀러의 '우리는 사소한 존재다'라는 반성적 문장을 읽으니 젊은 날의 '가여웠던' 자신이 다시 생각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제가 진행하는 강연에 와서 운다는 건 저로서는 그야말로 신나는 일입니다. 저는 그분께 "울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이상한(?) 인사를 드리며, 어제 SBS에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봤는데 젊은 여성 출연자가 임재범 노래를 너무 잘하니까 심사위원석에 있던 차태현이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며 "나 미쳤나 봐"라고 했던 장면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분도 웃으며 차태현과 비슷한 심정이었다고 고백하더군요. 저는 이런 수강자들이 진짜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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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가르치려 가서 오히려 배우고 온다'는 말은 이제 식상한 표현이 되었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에게, 많은 곳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현상입니다. 요즘 제가 겪고 있는 축복 같은 일이기도 하고요. 자활센터에서 제 강연을 들어주신 분들, 줌으로 와서 들어주신 분들, 그리고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보령시민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에 제가 힘을 냅니다. 오늘 아내는 서울 가고 저 혼자 집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자랑하고 싶어져서 이 글을 씁니다. 또 아내가 요즘 저 뭐 하고 다니는지 잘 모르는 것 같길래 '보고서' 차원에서 쓰는 글이기도 하고요. 저는 공처가니까요. 아내가 이걸 읽으면 '무늬만 공처가'라고 또 화를 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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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밤에 비가 많이 올 것을 대비해 마트에서 30도짜리 안동소주와 납작만두를 사놨습니다. 근데 비가 잦아드네요.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밤에 비가 마구 쏟아져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