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오천항에서 아내와 나눈 이야기
오늘 오전에 청소역에 갔다가 시간이 잠깐 남는 바람에 오천항에 들렀다. 전에도 한 번 간 적이 있는데 아내가 '항구가 예뻐서' 다시 가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차를 타고 가면서 요즘 아내가 읽고 있는 이문구 선생의 『관촌수필』의 첫 번째 단편 「일락서산」 얘기를 두런두런 했다. 아내는 이문구 선생의 글은 품위가 있으면서도 리듬감이 있는 명문장들이라며 좋아했다. 보령에 그런 문인이 계셨다는 건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던 중 충청수영성 가는 표지판을 지나 오천항에 도착했다.
보령 오천항은 천수만 안쪽의 잔잔한 천혜 항구인데 주변 산세가 방파제 역할을 해 사계절 배들이 평화롭게 떠 있는 게 자랑거리라고 했다. 키조개와 홍합이 많이 나기로 유명한데, 바다는 예뻤지만 방파제와 바다 사이에 난간이 없고 바로 꺾어 지른 절벽이라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좀 어질어질했다. 아내도 겁난다면서 얼른 나가자고 했다.
다시 차를 타고 오며 나도 얼마 전 미옥서원에서 구입한 『매월당 김시습』 이야기를 했다. 김시습의 이름은 논어의 첫 문장 '배우고 때로 익히면(學而時習之) 즐겁지 아니한가'에서 따왔고 그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 총명해 '오세 신동'으로도 불렸다는 얘기를 하며 내가 잘난 척을 했다. 소문을 들은 세종이 친히 불러 어린 김시습을 칭찬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세조가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되자 맛이 가서 머리를 깎았다고 했더니 아내가 "그럼 중이 된 거야?"라고 물었고 나는 "아니, 그냥 머리만 깎았어."라고 대답했다. 아내는 다시 그 사람이 나중에 삿갓 쓰고 다닌 거냐고 물었고 나는 "아니, 그 사람은 감삿갓이지. 본명을 김병연이라고, 김시습하고는 달라."라고 설명해 주었다.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내는 "그 사람이 대동강 물도 팔아먹었지?"라고 묻길래 내가 다시 웃으며 "그 사람은 봉이 김선달. 죄다 김 씨라 헷갈린 모양이네."라고 말했다. 아내는 "이유, 웬 김 씨가 이렇게 많아?!"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아내는 "당신 아내가 이렇게 무식해. 아, 너무 웃긴다. 이 얘기 꼭 글로 써봐."라고 말했다. 아내는 자신을 낮추어 웃음을 만드는, 배포가 참 큰 사람이다. 덕분에 오천항과 아내와 김시습이 어우러진 참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에 여기에 짧은 기록으로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