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인 시인의 시집 제목을 읽고 든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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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인스타그램에서 송세아 시인의 시집 『새벽에 전화해도 되나요』를 발견했다. 시인의 포스팅 안내에 따라 온라인서점에 들어가 '미리 보기'를 해보니 시인의 말에 '새벽녘 아끼는 이에게 전화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오고 목차에도 전화나 통화에 대한 제목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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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보게 된 시집 제목은 '밤이고 새벽이고 언제든 전화해도 괜찮다'라고 했던 한 정신과 의사를 떠올리게 했다. 아내가 전 남편과 헤어지기로 마음먹었을 즈음 너무 심란해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의사는 당시 매스컴에도 등장하던 꽤 저명한 사람이었는데 진료가 끝나고 돌아서는 아내에게 '깊은 밤이든 새벽이든 언제든 좋으니까 필요하면 망설이지 말고 전화하시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에게 전화를 건 적은 없지만 의사의 그 한 마디는 너무나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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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만나 연애를 시작할 때였다. 불광동 본가로 제사를 지내러 간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아버지와의 불화 등으로 심란해서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밤새 이불속에서 한숨을 내쉬다 새벽 5시쯤 일어나 아파트 뒤쪽 산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아내(당시는 여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벽 여섯 시였다.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무래도 내가 깨어 있을 것 같아 전화했다는 것이었다. 귀신 같은 여자였다(사실은 아내도 밤을 꼬박 새웠다고 했다). 나는 둘레길을 천천히 걸으며 아내와 통화했다. 솔직히 나는 그때만 해도 아내와 진지하게 사귀는 일에 자신이 없어 도망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새벽에 통화하면서 어떤 확신이 생겼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이 여자와는 미래를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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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로 내려가 방을 하나 얻고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의 원고를 쓸 때 일이다. 하루는 새벽에 아내가 전화를 했다. 급한 용건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내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했다는 것이었다.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아내는 "나, 앞으로도 이렇게 아무 때나 당신한테 전화해도 되지?"라고 물었고 나는 "그럼. 당연하지."라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은 나는 '아무 때나 전화할 수 있는 사이'에 대한 글을 한 편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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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립도서관에서 매주 수요일에 내 강의를 듣는 분 중 아들 일로 심란해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 두 시에 챗GPT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분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시간에 전화할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아닌 기계와 대화를 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막상 해보니 의외로 크게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그분의 심정도 이해가 되었지만 역시 대화 상대는 사람이 제일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송세아 시인처럼 '새벽에 전화해도 되나요?'라고 물을 사람이 당신에게도 있는가. 카톡이나 문자메시지와 통화는 다르다. 단언컨대 새벽에 전화해도 짜증 안 내고 반갑게 받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꽤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행복은 멀리 있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단 한 사람이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