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침 산책 길에 했던 생각들

글은 오늘부터, 당장 써야 합니다

by 편성준


어제는 아내와 장난처럼 낮술을 마시고 잠들었다가 한밤중에 깨어 마루로 나가 새벽까지 책을 읽었습니다.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은 제가 보령시립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장르 소설 읽기' 모임에서 마지막으로 다룰 책입니다. 전에 읽다가 바빠서 중간쯤에 손에서 놓았었는데 이번엔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처음부터 읽었습니다.


SF소설이지만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잘 그려낸 클라크의 이 소설 끝 부분을 좀 남겨두고 새벽 4시 반쯤 침실로 들어가 자다가 다시 눈을 뜨니 아침 9시 30분이더군요. 세수와 양치를 하고 아내와 함께 매일 먹는 캐비초크를 미지근한 물에 타 나눠 마시고 집 뒤에 있는 봉산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저는 산책을 하다가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주 메모하는 편입니다. 오늘은 내일 있을 경북 상주의 글쓰기 마지막 수업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할까 생각하며 걷다가 '1월 1일에 담배 끊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라는 문장이 떠올라서 급히 메모를 했습니다.


흔히 뭔가를 결심할 때 특별한 날을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년 1월 첫날부터 금주 또는 금연해야지, 살을 빼야지 같은 결심 말입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죠. 내년 1월 1일부터 열심히 쓸 거야, 하는 마음을 먹으면 남은 보름 동안은 쓸 수가 없습니다. 그때까지는 안 써도 되니까 마음이야 편하죠. 하지만 글은 오늘부터 당장 써야 합니다. 잘 써지는 장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듯 잘 써지는 날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글을 쓰기로 결심한 장소가 잘 써지는 곳이고, 결심한 그날이 글 쓰는 사람으로 변하는 첫날입니다.


실제로 저는 아내를 만나기 전에 담배를 끊었는데 1월 1일부터 끊은 게 아니라 금연을 결심한 10월인가 11월인가 어느 날에 문득 끊었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납니다. 그날 저녁 MBC-TV의 무슨 프로그램인가에 소설가 김홍신 선생이 나와 "누가 매일 독약을 극소량씩 주면서 먹으라고 하면, 그거 먹겠어요? 근데 담배는 매일 피우거든."이라고 말하는 걸 본 다음부터 저도 담배를 안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김홍신 작가도 소문난 골초였는데 금연에 성공한 분입니다. 그러고 보면 결심만 하면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는 존재인 모양입니다. 담배 끊은 얘기는 나중에 다시 기회가 되면 말씀드릴게요. 힘든 월요일이자만 이미 반이 지났으니 당신도 잘 견뎌내실 것이라 믿습니다. 당신께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당신께 보내면서 제 스스로에게도 작은 응원을 보내봅니다. 고맙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쓰다 보면 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