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자주 올걸, 하는 반성

명필름 아트센터에서 심재명 대표와 나눈 이야기들

by 편성준

문화 기획 집단 '삼묘상상'을 포함해 가깝게 지내는 작가·기획자 친구들과 명필름 아트센터에서 일본 영화 《해피엔드》를 보기로 한 날짜가 지난 1월 17일 토요일이었다. 일본 감독 네오 소라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대지진이 예고된 근미래의 도쿄가 배경이다. 음악 동아리에서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 고3 유타와 코우(재일 교포)는 아타·밍(대만인)·톰(흑인) 등과 함께 함께 불법 클럽에서 얻은 EDM을 들으며 ‘마지막 청춘’을 즐긴다. 하지만 교장이 새로 산 차를 거꾸로 세워 놓는(진짜로 보면 되게 신기하다) 장난을 친 뒤 학교에 AI·안면인식 감시가 도입되고, 경찰·학교의 압박과 단속은 이주민이나 소수자에겐 더 가혹해진다. 흔들리는 커튼과 책상 등으로만 지진을 묘사하는 영화적 감각이 좋았고, 교장과 학생이 대화하는 모습을 숨어서 보며 엉뚱한 내용으로 '더빙' 장난을 치는 장면은 싱거우면서도 진지한 일본 특유의 자잘한 유머라서 좋았다. 그리고 음악이 특히 좋았는데 이는 명필름 아트센터의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 시스템 덕분이었다.


유난히 극장에 관객이 많아 보였다. 그건 아마도 명필름아트센터가 2월 1일에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어서였을 것이다. 다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자주 올걸, 하는 반성과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심재명 대표와 이은 감독은 2015년부터 극장과 카페를 비롯해 명필름이 제작한 영화 아카이브와 전시 공간 등을 운영해 왔다. 카페를 들어서니 커다랗고 순한 개가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심 대표가 입양한 이 가게의 명물 '머털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심 대표가 식당을 예약해 놓았다고 해서 김성신 평론가, 김혜선 작가 등과 함께 파주 헤이리에 있는 '준루'라는 식당으로 갔다. 일본에서 요리를 배운 셰프가 중국식 음식을 내놓는다는 신기한 곳이었는데 튀김이나 닭고기 등 모든 요리가 맛있었고 이 집에서만 판다는 고량주도 깨끗했다. 우리는 극장에서 본 영화 이이기를 시작으로 그동안 명필름을 거쳐 간 많은 영화와 사람들 얘기를 했다. 요즘 영화계와 출판계의 명암에 대한 걱정과 희망이 오갔고 우리 부부가 보령에 내려와 시작한 작은 문화 프로젝트들 얘기도 곁들였다.


심 대표가 마련해 준 영화사 기숙사(아카데미 운영할 때 쓰던 숙소라는데 규모가 작지 않아 놀랐다)에서 자기로 하고 심 대표가 집에서 가져다준 맥주와 화요를 한 병 더 마시고 잤다. 의도치 않게 술을 많이 마신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내가 평소 하던 대로 '손님이 자고 갔는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깨끗이 청소를 하고 나오니 심 대표가 해장국을 사줬다. 이 때도 영화 《게임의 법칙》과 강제규 감독 이야기를 했다. 심 대표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차를 몰고 남쪽으로 향하는데 아내가 '이 나이에도 남에게 밥을 얻어먹고 다닌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곧 "이 나이에도 밥을 사주고 재워주는 분들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라는 얘기도 했다. 횡설수설하는 걸 보니 술이 덜 깬 것 같았다. 아내는 "내가 혼자였다면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대우해 주겠어? 당신과 함께 다니니까 이런 거지."라며 남편의 기를 살려 주려 노력했다. 그래서 우리는 잘 살아야 한다는 아내의 말에 동의하면서 '잘산다'는 건 부유하게 사는 것이고 '잘 산다'는 건 바르게 떳떳하게 사는 것을 뜻한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아내에게 그런 얘기는 하지 않고 얌전히 앞만 보고 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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