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보령에서 괜히 혼자 바쁜 척하는 편성준

이문구 기념사업회에서 글쓰기 줌 강연까지

by 편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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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엔 원도심어울림센터 3층에서 이정록 시인이 4주간 진행했던 '디카시 수업' 수료식과 함께 수강생들의 시를 수록한 책을 실물로 확인하는 시간을 나누었다. 이 수업은 원래 다른 시인이 진행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분의 건강이 급속도로 안 좋아지는 바람에 급하게 이정록 시인에게 연락을 해서 대신 맡아 진행해 달라고 했던 수업이었다. 이정록 시인 특유의 충청도식 유머와 문학적 친화력으로 높은 출석률을 기록했던 화제의 강좌였음도 밝혀야겠다. 다들 난생처음 써 본 보령 시민들의 디카시였지만 짧은 교육 기간에 비해 놀라운 작품들이 탄생했다. 특히 이날은 이문구 선생의 친누이와 친했던 이종분 할머니가 나오셔서 이 작가를 둘러싼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얘기해 주셨는데 93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또렷한 기억력과 놀라운 기백에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기역니은 순으로 수록되는 바람에 내가 쓴 디카시 '옹점이'가 판권면(copyright page) 바로 옆에 실리는 행운을 누렸다. 윤용현 선생이 내 시가 제일 좋았다고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지만, 사실 아내와 내가 최고로 꼽은 작품은 김견남 선생의 '성공한 이름'이란 작품이었다. 그 작품을 잠깐 읽고 가자.


성공한 이름


김견남


사내를 보라 지은 이름

남동생을 보았고

남편을 만났고

아들에 손자까지 보았다.

불 見, 사내 男, 이름값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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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이문구 기념사업회 결성식이 저녁 7시에 보령 원도심어울림센터 3층에서 열렸다. '작가들의 작가'이자 보령이 낳은 위대한 소설가인 이문구 선생이 돌아가신 지 23년이 자나 비로소 생긴 단체다. 보령의 소설가 황선만 작가와 보령문화원 한흥호 사무국장 둘이 맨 처음 의논을 했고 이어 열 명의 제안자 모임을 만들어 안건을 내기 시작했는데 나와 아내 윤혜자도 운 좋게 거기에 끼어 2026년 1월 9일에 1차 준비 모임을 가졌다. 진행은 황선만 작가가 정관을 만드는 등 궂은 일을 도맡았고, 회의 장소로 자신의 사무실을 제공하기도 했고 결국 원도심센터에서 열린 결성식 사회도 보았다. 충남작가협회에서도 이명재 회장님이 오시는 등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는데 임원단 회의 끝에 서순희 소설가를 상임공동대표로 선출한 것은 모임의 쾌거였다. 시인과 소설가, 비평가, 편집자, 행정가 등 보령과 충남의 문인·문화관계자가 한 자리에 다 모인 자리였다. 행사가 끝나고 뒤풀이에서 솔출판사를 운영하는 평론가 임우기 선생을 알게 된 것도 개인적 행운이었다. 아내 윤혜자는 임 선생과 얘기를 하다가 그의 최신작 『은폐된 서술자』를 온라인으로 구입하기도 했다. 새벽 1시 반까지 장렬하게 마시다 서순희 선생이 부른 택시를 함께 타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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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깨지 않은 몸과 마음을 추슬러 하루 종일 강연 준비를 했다. 어제인 목요일 저녁은 줌으로 진행하는 《저자로 발돋움하는 에세이 쓰기》 두 번째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강연은 과제로 수강생들이 쓴 원고 중 좋은 작품들을 골라 몽스북 '나에게' 시리즈 투고로 연결한다고 예고를 했기 때문에 조금 더 특별할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아홉 명의 수강생 전원이 이렇게 열정적으로 원고를 써 보내올 줄은 몰랐다. 모두 개성 있는 글을 보내왔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폴댄스'를 하고 있는 분의 글이 뛰어났다. 팩트로 시작해 관념어로 옮겨가는 문장들이 탁월했다. 다음 주엔 또 어떤 글들이 도착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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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리뷰를 꼼꼼하게 다 하고 강의까지 마치고 나니 열 시 반이었다. 냉장고에 있는 만두를 쪄서 청주를 한 잔 하고 잘까 하고 물을 끓이다가 생각을 고쳐 먹고 캐비쵸크와 콜라겐을 미지근한 물에 타서 한 잔 마시고 안방 TV로 넷플릭스에 들어갔다. 우연히 찾은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예전에 스티븐 킹의 원작을 재밌게 읽은 드라마였는데 주인공 빌 호지스 역으로 (마틴 맥도나 감독 영화에서 낯을 익힌) 브랜든 글리슨이 출연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대박인 건 제작과 각본을 맡은 사람이 데이비드 E. 켈리라는 것이다. 데이비드 E. 켈리가 누구란 말인가. 내가 술 약속을 미루어가며 본방 사수했던 드라마 《엘리의 사랑 만들기》의 각본을 썼던 극작가이자 미셸 파이퍼의 남편 아닌가. 내 기억이 맞는다면 한때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옷 잘 입는 극작가'라는 웃기는 감투까지 썼던 사람인데 아직도 이렇게 현역 제작총괄로 활동하고 있다는 게 놀랍고도 반가웠다. 두 편을 보고 나니 새벽 세 시였다. 아내는 서울에 가고 나 혼자 있는 보령에서 나는 왜 이렇게 바쁘게 지내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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