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내란 재판 1심을 지켜본 소감

판사님들, 책을 읽고 시장에 가세요

by 편성준

12월 3일 느닷없이 내려졌던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명백한 친위 쿠데타였다. 그런데 이 간단하고도 당연한 판결을 내리기까지 왜 443일이나 걸렸나. 나는 오늘 지귀연 판사의 판결문을 실시간으로 들으며, 오랜만에 ‘국민’이라는 단어가 비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 시간 넘게 이어지는 문장 사이사이마다 우리 모두는 같은 상상을 했을 것이다. ‘혹시 또 풀어주는 건 아닌가?’ 그가 “다만……” 하고 문장을 꺾을 때마다 전국이 동시에 숨을 삼키는 풍경이라니(이화경 작가는 당분간 ‘다만’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다고 할 정도였다).


적어도 12.3 이전까지는 우리에겐 사법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들은 성역이고 ‘최후의 보루’였다. 다툼이 있는 사안이 생기면 '대법원 판례'를 찾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판사라면 정치적 입장이나 민심에 흔들리지 않고 시민으로서의 양심과 지식, 그리고 최소한의 품위를 바탕으로 판단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윤석열 일당의 범죄 덕분에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의 사법부는 ‘보루’가 아니라 ‘방음벽’이었다는 것을. 시민의 상식이 야광봉과 키세스 우비 아래 물결쳐도 안에서는 법기술로 소음을 줄이고, 바깥으로는 우리가 서로의 굴욕을 공유하게 만드는 장치 말이다.


지귀연 판사는 양형의 무게감을 세우기 위해 17세기 잉글랜드의 찰스 1세까지 끌어왔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군주조차 반역죄로 처벌받았으니 윤석열의 처벌도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그 과욕은 잠시 ‘역사 교양’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문장들은 너무 익숙해서 섬뜩했다. 초범, 공무원 경력, 비교적 고령…. 그 단순함과 관성 앞에서 다시 등골이 오싹해졌다. 앞서 7년 형을 받은 이상민이 떠올랐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언론사 단전·단수 내용이 담긴 쪽지를 ‘얼핏 봤다’라고 증언했던 그는 이태원 참사 때도 아무 책임을 지지 않은 뻔뻔한 행안부 장관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가벼웠던 사법부가 내란 수괴에게 “내란 초범” 딱지를 붙이는 건 그 안의 누군가가 최소한의 인문학적 통찰조차 갖추지 못했음을 자백하는 일과 다름없었다.

윤석열이 계엄령으로 끼친 피해는 정치·경제 분야에만 있지 않았다. 국민은 일 년이 넘도록 밤잠을 설치고 삶의 의욕을 갉아먹히며 뉴스와 정치 유튜브에 매달려야 했다. ‘윤어게인’을 뻔뻔하게 외치는 일부 극우 세력을 ‘양분된 정치 세력’으로 포장하는 언론의 태도 속에서 스트레스는 더욱 치솟았다. 그런데도 오늘 지귀연 판사의 판결문에는 그들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형량을 분배하는 건조한 문장들이었다. 마치 “게임을 했는데 이번 판은 너희가 졌으니 너는 무기, 너는 삼십 년......”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사법부가 법 기술자 이전에 문화인이 되기를 바란다. 솔직히 말하면 판사들이 너무 무식하다. 여기서 말하는 무식은 ‘법을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을 모른다는 뜻이다. 법전은 외우는데 인간을 모르는 무식이 드러난다. 이제 그들에게 법률서적을 덜 읽히고 세상 공부를 시켰으면 한다. 일주일에 이틀은 의무적으로 법원을 나가 남대문시장을 샅샅이 뒤지고, 소외된 이웃들과 어울려 밥을 먹고, 서민들이 하루치 생계를 어떤 표정으로 꾸려가는지 몸으로 배우게 하자.


문학작품도 읽게 하자. 한 달에 두세 번은 장편소설을 읽고 “이 소설 속 인물에게 내가 판결문으로 러브레터를 쓴다면”이라는 주제의 리뷰를 의무적으로 쓰게 하면 좋겠다. 넷플릭스 10위 안 드라마를 보고 판사와 시민이 어울려 함께 토론하는 장을 만들자. ‘사법부 교양 패키지’라고 이름을 붙이면 예산도 따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다음 재판에서는 여자친구를 무참하게 살해한 의대생에게 “다만, 너는 공부도 잘하고 앞으로 사회에 기여할 것 같으니” 같은 말로 양형 사유를 쓰는 일이 없을 것 아닌가. 김건희와 이상민의 판결 때 많은 사람들이 ‘판사님들은 어디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 같다’라는 얘기를 했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판사님들이 ‘교양’을 길러서 그런 평판에 반기를 들어주기 바란다. 잃어버린 당신들에 대한 존경은 당신들이 노력해야 되찾을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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