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웅 연출의《칼로막베스》
안녕, 스친들. 오늘 스레드를 시작한 기념으로 연극 리뷰도 하나 올릴게. 나는 연극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해. 금요일엔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고선웅 연출·작의 '칼로막베스'라는 작품을 관람했어.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이건 셰익스피어의 '멕베스'를 비틀어 한 판 놀아보자고 아주 작정하고 덤비는 제목이지. 맥베스를 통해 권력에 대한 욕망과 허무를 전한다는 건 셰익스피어와 같지만 마당극처럼 요란한 대사발과 무협지를 보는 듯한 화려한 액션, 슬랩스틱 코미디 등은 지금까지의 맥베스와는 엄청난 차별점이야. 연극이 시작되면 원형으로 꾸며진 무대에 건장한 체격의 남성과 여성들이 등장하고 그중 한 배우가 튀어나와서 말해. 여기는 아주 아주 아주 먼, 머언 미래, 강력범과 무정부주의자들만 모아 놓은 '세렝게티 베이'이이고. 그리고 이 연극은 2010년에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도 받았다고. 나 참. 그러니까 연극 무대의 안과 밖을 가리지 않겠다는 '메타인지형' 연출 선언인 거지.
고선웅 연출은 신이 났어. 작년에 서울시립극단 단장직을 마치고 자유로운 몸이 되자 자신의 극단 마방진의 20 주년 기념 공연들을 시작했는데 그 첫 번째가 《칼로막베스》거든. 고선웅은 중국 고전을 현대화하는 것은 물론 현대극, 실험극, 창극까지 건들지 않는 분야가 없었고 그걸 대부분 성공적으로 수행한 연극 천재야. 하성광 배우의 명연기가 빛났던 그 유명한 《조씨고아 : 복수의 씨앗》도 이 사람 작품이지. 아무튼 체격 좋은 남자들 중에 맥베스 역을 맡은 김호산 배우가 있어. 그가 전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맹인술사로부터 "왕이 될 상이로다"라는 예언을 듣고 왕인 당컨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지. 오, 당황하지 마. 이 연극은 원작에서 세 명의 마녀로부터 예언을 들은 맥베스가 아내의 부추김에 떠밀려 던컨 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으면 그다음부터는 관람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까.
배우들의 과장되고 유머러스한 액션과 수다스러운 대사들은 이 연극의 백미야. 특히 당컨 보스 역을 맡은 전재형 배우의 몸짓과 대사는 너무너무 웃겨서 '저 사람 혹시 코미디언 아냐?' 하는 의심이 들 정도야. 다른 배우들도 다 체격이 지나치게 좋길래 찾아봤더니 김호산 배우는 검도 5단을 포함해 도합 10단인 유단자라고 하고 또 다른 배우는 해동검도 학원을 하고 있다나 뭐라나. 또 하나의 포인트는 창극 배우로 유명한 김준수가 '레이디 맥베스'로 나온다는 거지. 남자가 여장을 하면 여자보다 훨씬 여성스럽고 수다스러운 아줌마로 돌변한다는 건 잘 알지? 빨간 가발을 쓰고 등장한 김준수는 권력의 배후였던 레이디 맥베스를 넘어 욕망의 화신 그 자체로 등장하지.
아내와 나는 이번 예매는 힘들게 성공해 매우 뒤쪽 자리를 겨우 잡았는데 그래서 대사가 좀 작게 들리는 아쉬움이 있었어. 아내는 김준수의 인기가 너무 많아서 이렇게 된 거라고 투덜거렸지. 케이블 TV에 출연해 트로트를 부르는 바람에 전국 스타가 된 김준수가 국립창극단을 그만두고 처음으로 출연한 작품이니 뭐, 그 예매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겠어.
혹시 오랜만에 연극 한 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16년 만에 돌아온 ‘칼로막베스’를 추천할게. 연습을 많이 해서 합이 척척 맞은 무술 장면에, 마가 뜰 새 없이 주고받는 현란한 대사들에, 곳곳에 배치된 배우들의 애드리브까지...... 120분의 러닝 타임이 쏜살 같이 흘러갈 거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3월 15일까지 공연하니까 기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