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으로 독자를 설득하는 오페라 사용 설명서

『오페라를 처음 보는 당신에게』

by 편성준


1970년대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에 다니던 '김 과장'은 아내와 아이들을 경북 의성에 있는 부모님 댁으로 보내고 자신은 사우디아라비아로 간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런데 현장의 나이 많은 건설 노동자들은 책상물림이라며 김 과장을 무시했다. 하루는 너무 화가 난 그가 안전모를 땅바닥에 내던지며 화를 내고 있는데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영국인 감독관이 그를 자신의 숙소로 불렀다.


잔뜩 긴장해 소파에 앉은 그에게 영국인은 LP 음악을 들려주며 말했다. "이건 오페라 《팔리아치》에 나오는 <의상을 입어라>라는 아리아야. 남자는 유랑극단의 광대인데, 어느 날 아내가 다른 사내와 불륜을 저지르는 광경을 목격하지. 기분이 어떻겠어. 그런데 그때 마침 공연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고 그는 피눈물을 흘리며 얼굴에 흰 분칠을 하고 의상을 입지. 이 곡의 가사는 '광대여, 아내가 너를 속여도 의상을 입어라. 얼굴에 분을 바르고 광대의 의상을 입어라.......' 미스터 김,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안전모를 던지면 안 돼. 당신은 책임자잖아. 당신의 분노를 그 안전모 밑에 감춰야 해."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돌아온 김 과장은 틈만 나면 레코드 가게를 뒤지며 《팔리아치》라는 오페라 레코드를 찾았다. 몇 개나 되는 LP를 구입한 끝에 드디어 사막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를 찾는다. 재킷에는 마리오 델 모나코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가족들이 잠든 밤이면 혼자 조용히 그 아리아를 듣곤 했다. 그리고 오페라 《팔리아치》 전체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자 더 큰 감동이 찾아왔다. 《팔리아치》는 지금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다.


풍월당의 박종호 대표가 쓴 『오페라는 처음 보는 당신에게』 맨 앞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저자는 이 글이 '풍월당 고객 가운데 한 분이 들려준 오페라 경험담'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나는 오페라라는 고급한 문화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읽혔다. 구체적인 시기와 인물이 있고 갈등이 있다. 적당한 긴장과 반전도 있다. 그리고 결론은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알게 되는 '인생의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 오페라가 단 한 번의 계기만 주어진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강력한 호소력의 예술임을 강조한다.


박종호 대표는 풍월당 대표, 오페라 평론가, 문화 예술 칼럼니스트, 정신과 전문의 등 여러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내 생각엔 오페라에 대해선 '일자무식'인 나까지 끌어들이는 스토리텔러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앞부분에 홀려 책을 이어 읽다가 오페라 대본을 쓰는 사람을 리브레티스트(librettist)'라고 부르고 라하르트 바그너는 문학적 능력이 뛰어나 오페라 대본까지 스스로 집필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책을 좀 더 천천히 읽다가 내게 맞는 오페라를 고른 뒤 슈트를 차려입고 오페라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상상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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