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의 『조선의 싱어송라이터』
책 쓰기 워크숍을 진행하다 보면 자신의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미경 선생도 그런 분이었다. 서울의 학원가에서 오래도록 고전 과목 일타강사로 통하는 분이 이미경이었다. 이런 분이 워크숍에 와서는 자신의 평생 독서 이력과 연대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아니, 선생님. 왜 이러세요? 선생님은 고전 일타강사잖아요. 그 밑천을 활용하시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은데요.
우리 얘기를 들은 선생이 다다음 주에 컨셉을 바꿔왔다. 조선 시가와 현재의 가요 가사의 공통점을 뽑아 보편적 정서를 뽑아내는 신박한 책이었다. 나는 너무 좋아 박수를 치며 말했다. 좋아요, 선생님. 얘기를 들어보나 황진이나 정지상이나 모두 지금으로 치면 싱어송라이터들이었네요. 책 제목은 '조선의 싱어송라이터'로 하면 되겠어요
그리고 한참 후 정말 '조선의 싱어송라이터'라는 제목의 책이 우리 집에 도착했다. 고전시가든 현대 대중가요든 남녀 간의 사랑이나 이별 이야기 아니면 쓸 말이 없었고 인생의 허망함을 노래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다. 고전시가는 선생의 전문 분야니 말할 것도 없고 가요도 늦둥이 딸을 둔 덕분인지 젊고 감각적이었다. 더구나 선생은 오디션 프로그램도 좋아해 안예은 같은 신예의 곡까지 짜하게 꿰고 있었다. 이렇게 두루 잘 아는 분야를 쓰니 글이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책을 쓰며 다시 자료들을 들춰보니 동짓달 기나긴 밤을 잘라 간직할 줄 아는 황진이는 영락없는 시간여행자였고, 정적이었던 정지상과 김부식은 결국 문장 몇 줄 때문에 서로를 죽이려 들었던 문 적(文敵) 관계였다. 선조를 향한 정철의 사모곡은 너무 사무쳐 '퀴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게 했고, 한사코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 김민기가 '친구'라는 곡을 자기 앨범에 넣었던 이유는 개인적 체험이 시대의 분위기를 대변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책을 쓰며 더 유식해지고 깊어진다. 지식이 많다고 다 책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글을 잘 쓴다고 누구나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자신 안에 들어 있는 지식과 언어를 제대로 꺼내려면 진심 어린 열망과 인문학적 토양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 이 따끈따끈한 책을 읽으면서 전보다 훨씬 좋아진 이미경 선생의 문장력과 인문학적 지식에 놀랐다.
이런 책은 정부에서 정하는 '무슨무슨 도서'에 선정되어 학생들에게 읽히거나 진중문고에라도 선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만큼 좋은 책이 한 권 나왔다는 얘기다. 한 권씩 사놓고 자신이 좋아하는 가요나 뮤지션이 생각날 때마다 찾아 그와 커플로 맺어진 조선시가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래저래 강추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