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원하는 사람들의 시대정신을 꿰뚫은 드라마

tvN의 레트로 오피스 코미디《언더커버 미쓰홍》

by 편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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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루타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장외 홈런이 되어버린 화제의 드라마 《언더커버 미쓰홍》이 어제 끝났다. 서른다섯 살짜리 홍금보가 스무 살 홍장미로 위장 취업하는 얘기라고 하길래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설프고 황당한 전개 같지만 볼수록 고개가 끄덕여지고 통쾌함까지 느낄 수 있는 내공 만렙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는 1997년 IMF 시국을 담고 있다. 증권가인 여의도를 중심으로 구조조정, 비자금, 자본주의의 탐욕, 남녀 차별, 계급 차별 같은 요소들이 실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놀라운 점은 향수를 단지 소품으로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PC통신, 레트로 오피스, 금융 범죄 수법, 촌스러운 유니폼이나 정장 스타일은 배경 장식이 아니라 시청자를 그 시대로 데려가는 추진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즐거움 또한 컸다. 어리숙한 인물이 나중에 똑똑해지고 힘을 갖게 되는 건 영웅 서사나 무협지의 문법이다. 강노라나 고복희가 소시민적 찌질함에서 벗어나 대의를 추구하는 캐릭터로 변화하는 모습은 진짜 통쾌했고 심지어 신정우(고경표)까지 억울하게 밀려난 직원들과 삶의 터전을 지키는 방향으로 협조하게 되는 모습은 '약자들의 연대'가 만드는 기적을 보는 것 같았다.


주인공 박신혜가 당시 무술도 잘하고 코미디도 훌륭했던 홍콩의 인기 배우 홍금보였다는 건 재미를 넘어 의미심장한 설정이다. 박선호 감독은 여주인공 이름이 ‘홍금보’인 이유는 자신이 1990년대 홍콩영화에 대한 향수가 있었고 '전형적인 여성 역할의 고착화'를 전복하려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는 《은중과 상연》에서 천상연의 첫사랑 김상학의 PC통신 아이디가 '오맹달'이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 너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훌륭했던 건 '어디선가 정의로운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애쓰고 있다면 참 좋겠다'라는 사람들의 바람과 시대정신을 꿰뚫고 있었다는 점이다. 윤석열과 트럼프로 인해 피폐해진 우리 마음에 한 줄기 온기를 불어넣는 봄바람 같은 드라마였다. 잘했어, 미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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